김갑중 을지대병원 정형외과 교수·진료협력센터장
[시론]

필자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1년에 약 700~800건 정도 수술을 한다. 수술을 위해 환자들은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고, 회복 후 퇴원하기를 반복한다. 환자와 한번 맺은 인연의 고리는 퇴원을 한다고 해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퇴원 후에도 주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통해 완치됐다고 판단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살펴야 한다. 아마도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제일 반갑고 듣기 좋은 말은 의사가 환자에게 ‘이제 그만 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 십 수 년 동안 수많은 환자들과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 왔다.

환자들 중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분들도 있고, 필자는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데도 병원 외에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는 분들도 있다. 사실 이런 경우 얼굴은 기억나는데 성함을 잊어버린 경우가 제일 많다. 그런 환자분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성함을 여쭙고, 이후 병원에 돌아와 수술 환자 정리 파일에서 검색을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던 환자의 당시 수술 전후 엑스레이 사진들을 리뷰하고, 해당 환자와의 기억을 회상하곤 한다.

필자는 교수로 발령 받고 을지대병원 정형외과에 재직하는 동안 직접 수술한 환자들의 기록을 엑셀 프로그램을 활용해 관리하고 있다. 물론 환자의 개인 정보 취급 동의 후에 이뤄진다. 나이, 성별 등 환자들의 기본 정보와 수술 전후 진단명, 수술 당시의 수술 소견 등을 별도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 파일은 필자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바이블이며, 동시에 많은 가르침을 주는 역사책과도 같다. 아마 정형외과 의사로 은퇴할 즈음이면 해당 파일의 용량도 제법 크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최근 필자는 수상의 정도가 매우 심해서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와 마주하고 있다. 환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범위에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해당 환자는 현재 입원 치료 중인 20대 여성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시험에 합격해 누구보다 설레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할 줄만 알았던 이 시기에 환자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오른쪽 정강이뼈와 종아리뼈의 개방성 골절과 오른쪽 장딴지(하퇴부)의 광범위한 연부 조직 손상이 발생했고, 입원 다음날 필자는 환자의 수술을 시행했다. 이후에도 세 번에 걸쳐 죽은 조직을 제거하는 변연절제술과 정강이뼈 및 종아리뼈에 대한 추가 수술을 진행했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딴지 부위에 있었다. 환자는 장딴지 뼈를 둘러싸고 있는 연부조직이 손상됨에 따라, 옆구리나 허벅지, 복부 등에서 이식할 피판을 채취해 환부에 이식하는 성형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식한 부위와 이식할 부위에 수술 상처가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 것이 문제였다. 아직 미혼인데다 젊고 창창한 나이이기에, 그리고 여자이기에 이 부분을 생각하니 필자의 마음도 내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치료를 잘 마무리해야 했기에 환자를 찾아가 현재까지 치료 과정과 향후 받게 될 치료 방향 등에 대해 설명했다. 필자의 설명을 듣고 있던 환자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얼마나 속이 상하고 힘들겠는가? 필자에게도 참 가슴 아픈 순간이다.

환자는 최근 조금씩 의지를 갖고 본인이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극복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울기만 했으나, 이제는 치료 과정 중 궁금한 부분들에 대해 조금씩 묻기도 한다. 필자도 환자가 남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차질 없이 사회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힘을 북돋아주고 있다.

이렇게 수상의 정도가 심해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만나면 정형외과 의사의 역할이 얼마나 작고 부족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또 환자의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필자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아마 이 환자는 굳이 엑셀 파일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단번에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치료 잘 받은 덕분에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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