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휴먼 에이지'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년 새 급팽창한 인류의 기술 문명이 지구에 끼친 영향이 수백만~수십만 년에 걸친 지질학적 변화와 맞먹는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 같은 시각의 학자들은 현세를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로 구분할 것을 주장한다.

신간 '휴먼 에이지'(문학동네 펴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류가 지구 전체에 유례없는 장악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인해 대기 속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200년 전보다 3분의 1이 더 높아졌고, 작물을 키우기 위한 합성비료는 지구 상의 모든 식물과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질소를 만들어낸다.

지구 역사상 자연계 전체를 이처럼 극적으로 바꿔놓은 생물 종(種)은 인간 외에 수십억 년 전 유독가스로 뒤덮였던 지구의 대기를 산소로 채운 조류(藻類)뿐이라고 책은 지적한다.

하지만 책은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수 있는 파멸적 미래를 경고하는 묵시록적인 과학·환경 서적들과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저자이자 저명한 박물학자 겸 문필가인 다이앤 애커먼은 위협받는 지구 생태계에 대한 우려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인간이 지구를 장악한 '인류세'에 대해 낙관적인 시선을 보낸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서도 "더 따뜻해진 세상이 모두에게 끔찍한 세상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의 생물, 지형, 지질, 물, 기후가 행성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다면 모두 똑같은 비극이겠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길어진 여름이나 따뜻해진 바닷물이 범고래 같은 멸종 위기인 일부 종들의 생존에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과 온대성 작물의 재배지가 북쪽으로 확대되고 겨울철 난방용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점 등을 기후변화의 긍정적인 사례로 든다.

도시들로 인해 바뀐 지구의 풍경과 현대 문명이 가져온 무수한 발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을 부각한다.

책은 인류 문명에 의해 초래된 전 지구적인 변화에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인류가 마주한 현실과 미래가 실제로는 우려하는 것처럼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가 자신과 세상을 재창조해나가면서 생존할 줄 아는 동물이라며 신뢰를 보낸다.

"우리가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대단히 낙관적이다. 우리 시대는 숱한 죄를 지었지만 숱한 발명도 이뤄냈다. … 우리의 실수는 헤아릴 수 없지만, 우리의 재능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명남 옮김. 468쪽. 1만8천800원.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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