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주년 맞아…"신작은 '부족한 사람들'과 '온전한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연극계 거장 오태석 "로미오와 줄리엣, 지금시대 적합한 이야기"

등단 50주년 맞아…"신작은 '부족한 사람들'과 '온전한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금 시대에 적합한 연극이에요. 300년 전 어른들의 싸움 때문에 젊은이들이 어처구니없이 죽어가는데 어른들 때문에 싸울 게 아니라 어른들이 벌려 놓은 것 봉합하자는 이야기죠."

극작가 겸 연출가 오태석(77)이 올해로 데뷔 50년을 맞았다.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희곡 '웨딩드레스'가 당선된 이후 쉼 없이 희곡 창작과 연출을 계속해 왔다. 50년간 약 70편을 썼으니 1년에 한 편 이상 작품을 쓴 셈이다.

25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한국적 춤사위와 해학적 정서를 접목한 작품은 1995년 9월 처음 무대에 오른 뒤 20여년간 사랑받고 있다. 2006년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도 공연돼 호평받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23년째인데 100번쯤 공연한 것 같아요. 국립극단에서, 그것도 명동예술극장에서 기회를 주니까 이 작품을 하기로 했어요. 모처럼 명동 무대고, 또 5월이고 하니까 즐겁잖아요. 큰 잔치(대통령선거)가 하나 지나갔는데 그동안 상처받은 사람들이랑 모두 모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네요. 공연을 보면서 같이 웃고 같이 좋아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지금 시대에 들어맞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지금 시대가 (사람들이) 많이 나뉘어 있잖아요. 300년전 캐풀렛가와 몬터규가의 양가 어른들이 싸웠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그런데 젊은이들은 왜 싸우는지 몰라요. 아직도 비무장지대(DMZ)가 70년 넘게 유지되고 있고 조그만 반도가 나뉘어서 앙앙거리는데 볼썽사나워요. 젊은이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보면서 싸우지 말자 반성하고 어른들 때문에 싸울 게 아니라 어른들이 벌려 놓은 것을 봉합하는 거예요. 지금 시절에 적합한 연극이죠."


오태석은 한국적으로 재해석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소박하면서도 격이 있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젊은이들이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여성 한복 동정의 아름다움, 갓 쓴 남자들의 의연한 자태. 이런 것들이 젊은이들한테 신선하게 보였으면 해요. 우리 젊은이들이 그 격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는데 제대로 만나면 품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치마저고리, 두루마기가 정말 아름다운데 우리 자신도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어요. 새댁이 입은 노랑 저고리에 빨간 치마, 그냥 단순하고 소박한데 여체가 들어가면 그게 아름다움이 돼요. 단출하면서도 소박한, 은은한 곡선, 그런 아름다움이 담뿍 들어가 있죠."

100번쯤 한 공연이지만 연습에 또 연습이다. 공연마다 문제점을 찾아내 수정보완을 거듭한다. 연출가가 찾기도 하고 관객들의 피드백도 받아 그때그때 작품을 다시 다듬는다.

"독일 브레멘의 셰익스피어 전용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세 번 공연했어요. 극장 관장이 마지막에 세 편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매회 공연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하루 동안에도 낮과 밤 공연의 관객이 다르잖아요. 500명 관객인데 이쪽 관객 숨 쉬는 것과 저쪽 관객 숨 쉬는 게 다 달라요. 영화 필름을 트는 거면 모를까. 연극은 관객과 함께 숨 쉬는데 거칠다거나 하면 잡아내야 해요. 손님을 초대했는데 접대한 음식 소스를 싫어한다면 그걸 치우고 걷어내고 새로운 것을 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하루 동안에 고칠 수도 있지만 큰 뭉치면 2∼3일에 거쳐 고치기도 하죠. 틀린 걸 발견하고 의심하고 부정해가야 해요.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하죠. 그걸 고치지 않고 굳어지면 시멘트가 돼버려요."


그의 생활도 공연 아니면 연습의 반복이다. 쉴 새 없는 공연과 연습으로 그가 이끄는 극단 목화는 지난 한 해에만 17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공연 날짜만 100일에 이른다. 목화의 배우들은 매일 오후 2∼3시께부터 모여 지하철이 끊어질 시간까지 계속 연습을 한다.

"공연이 없으면 거의 연습을 하고 있죠. 배우들을 가능한 한 허구의 세계에 가둬놓으려고 해요. 현실과 부딪히면 이 짓(연극) 못하거든요. 공연 아니면 연습이다 보니 다른 공연 구경은 거의 못해요. 저도 늘 똑같이 하죠. 제가 나태하면 배우들이 그렇게 하겠어요. 상점 주인이 나오지 않는데 잘 되는 상점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쉼 없이 달려온 오태석은 벌써 또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가을께 공연할 '모래시계'는 사회에서 뭔가 '모자란 사람들'로 여겨지는 이들과 '온전한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 이야기다.

"실제 일본에 그런 마을이 있대요. 조금 '하자'가 있더라도 받아주는 그런 마을. 일본에서 가능하다면 우리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너무 '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계속되는데 '이기'(利己)에서 '이타'(利他)로 넘어가는 현장을 보고 싶어요. 조금 부족한 소수에게 이타심이 적극적으로 작용하는 그런 마을이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전한 사람이 꾀를 쓰는데 모자란 사람이 있어 일이 이상하게 엉뚱하게 흐르다가 결국에는 잘 봉합이 되는 그런 장면들이 나와요."

그는 끊임없는 창작 비결에 대해 "시대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시대와 같이 가는 거죠. 이렇게 복잡하고 모두 다 잘났다고 하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엄청나게 많은 글이 나와야 하는 나라예요. 아이엠에프(IMF) 때는 나라가 어렵다니 모두 금붙이를 내놓는 나라인가 하면 '나 아니면 다 죽어라' 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들도 우리나라에서는 한 달 지나면 새로운 일도 아니잖아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6월18일까지 공연된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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