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 청북교회 담임목사
[화요글밭]

10여 년 전, 신문의 독서관련 지면을 읽던 중 ‘인듀어런스, The Endurance’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본 제목보다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라는 부제가 인상적이어서 구입해 읽게 됐다. 실패면 실패이지 '위대한 실패'라니. 책의 내용은 이렇다. 103년 전인 1914년 8월에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kleton)이 27명의 대원들과 함께 인류 최초로 남극대륙을 횡단하기 위해서 탐험에 나섰다. 그때 이들이 항해에 이용했던 배가 '인듀어런스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섀클턴의 팀은 목적지를 불과 150㎞ 앞두고 얼어붙은 바다에 갇히게 되고, 배는 부서져서 남극해에 떠다니는 얼음덩어리들 위에 생명을 의탁하게 된다. 그렇게 2년을 버텨 1916년 8월 30일에 전원 구조될 때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을 탐험대원인 호주의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의 사진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당시 탐험대장이었던 어니스트 섀클턴은 구조 후에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드디어 해냈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 나왔소"라고 썼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환경과 바다의 환경, 추위, 대원들 간의 갈등, 무수한 선택의 기로 등에서 섀클턴은 대원들을 전원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이겨냈다. 그는 본래의 목적이었던 남극횡단에는 실패했지만 단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고 전원 구조되게 하는 임무를 완수해냈다. 그래서 '위대한 실패'라고 기록됐고 위기를 극복한 리더십의 모델로 빛나고 있다.

오늘 5월 9일, 우리는 뜻하지 않게 정상적이지 않은 일정에 맞춰 대통령이라는 국가의 리더를 선택해야만 한다. 언론은 '장미대선'이란 멋진 이름을 붙였지만 이번에 선출될 대통령의 앞길은 전혀 장밋빛이 아니다. 경제위기, 외교적인 문제, 북한의 핵문제와 위협, 국내 정치적인 환경 등으로 국가가 위중한 상태에 있다.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고, 국민들의 갈등은 화약고 같이 폭발 직전이다. 이런 절박한 위기에서는 누가 국가의 리더가 되어도 해결할 지혜가 모자랄 수밖에 없다. 최고의 지혜자인 솔로몬이나 대왕이라는 역사적 호칭을 얻은 알렉산더, 철학자의 통치를 주장했던 플라톤이 통치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해결할 길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얽힌 난맥이 남극 횡단 중 조난당한 탐험대의 위험보다 더한 형편에 놓여 있다.

그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기는 섀클턴 경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지옥을 헤쳐 나가려는 용기를 지닌 리더로서의 대통령이 선출됐으면 좋겠다. 이번 대선이 이뤄진 원인을 제공한 전(前) 대통령 때문에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서 다시 조명하는 기회들을 가졌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직업으로서 가장 위험한 직업군에 속한다고 한다. 한 언론인은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소방관"이라면서, "한국의 대통령이 불행해질 확률이 소방관보다 높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망명과 구속, 자살, 탄핵, 자녀들의 구속 등으로 험한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즉 한 명의 국민을 더 살리기 위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변 관리에 실패를 했기 때문에 받는 평가이다.

이제 오늘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이 자기 공약을 실현하는데 실패하고, 자신의 인기를 올리는데 실패했다고 평가 될지라도 위기에 처한 나라와 국민을 살리는 일에는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들의 생명이 어이없이 훼손당하는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리더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훗날 우리는 위대한 실패자를 떠올리며 그에게 감사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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