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영화계 데뷔 60년이 된다고 하면 연령층을 적어도 70~80대쯤으로 생각한다. 웬만해서는 한 분야에 60년 현역으로 남기도 수월치 않은 일이고 더구나 대중의 기억에 남아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성기(65세)<사진>. 올해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친지 꼭 60년이 되었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에서 아역배우로 등장한 뒤 중간에 10여년 남짓 공백기를 제외하고는 우리 영화현장에 늘 그가 있었다. 같은 대학을 다닌 까닭에 필자는 20대 초반의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베트남어과에 재학 중인 ROTC후보생으로 단정하고 절도 있으면서 남의 말에 귀 기울였던 성격으로 기억한다. 군에서 전역한 즈음 베트남 통일로 국교가 끊어지게 되면서 베트남어 전공자들의 일자리가 막힌 것도 그 즈음이었다. 1965년 '얄개전'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나 1976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다시 모습을 나타낸 후 지금까지 40여년, 여전히 현역배우로 활동 중이다.

이제는 '국민OO'라는 타이틀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안성기에게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제대로 어울리는 느낌이다. 국민배우로서 구비해야할 조건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적어도 몇 십년간 성실한 활동으로 대중적인 지명도를 유지해야하고 다양한 역할을 잘 소화하여 영화활동 경력 사이사이에 굵은 획을 긋는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 금전이나 이성에 관련된 이런저런 스캔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하고 지나친 정치성향 노출이나 과도한 광고모델 등 영리활동의 절제를 요구받는다.

안성기는 이런 요건을 고루 갖추면서 자기관리에도 철저하여 얼굴의 주름을 빼고는 두발이나 체형, 체중 등 일반적인 노화현상으로부터 비껴나 있다. 프랑스 국민배우라는 제라르 드 파르디외가 세금부과에 불만을 품고 러시아로 국적을 바꾸어 자신을 성원해준 프랑스 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사례처럼 '국민배우'의 언행이 몰고 오는 사회적 파장은 크다. 앞으로 더 많은 국민배우가 탄생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을 묶어주고 소박한 공감대를 넓히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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