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장미(薔薇)는 붉다. 그래서 로즈(Rose)다. 붉다는 것은 열정이다. 사랑, 질투, 미움, 반목마저도 뜨겁게 삼킨다. 잘록한 몸매, 도도한 자태는 나비며 벌 그리고 온갖 열망들을 유혹한다. 남자들을 불러 모으고 심지어 여자까지도 불러들인다. 발정 난 향기는 남녀 심벌을 스쳐 지나며 도회적인 치부를 드러낸다. 장미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는 24~27℃다. 인간이 가장 맛있게 잘 수 있는 온도와 같다. 장미가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온대성 상록관목이기 때문이다. 5℃만 돼도 스스로 생육을 정지하고, 0℃이하가 되면 휴면에 들어간다. 그만큼 생멸의 처신이 분명하다.

▶장미의 화신 클레오파트라는 팜므파탈의 대명사다. 고대 로마의 위대한 명장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도 그녀의 향기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게 살다가 화려하게 떠난 마릴린 먼로의 인생도 장미로 점철된다. 그녀는 치마 속 숨겨진 볼기처럼 내밀했다. 그녀의 무기는 장미꽃잎이 뒤덮인 침대 위에서 나신(裸身)의 밤을 보내는 거였다. 지금도 '마릴린 먼로 로즈'는 그녀의 향기로 남아 세상의 뜰에서 피고진다. 주체할 수 없는 광기로 해바라기에 천착했던 고흐 또한 장미 앞에서는 한 떨기 탱화(幀畵)에 지나지 않았다.

▶장미는 상처와 보복, 모순의 꽃이기도 하다. 중세시대 영국의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은 왕위 계승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다. 랭커스터 가문은 붉은 장미, 요크 가문은 흰 장미 문장(紋章)을 썼다. 30년간 지리한 싸움을 치른 양가는 결국 결혼으로 화해했고, 양가의 장미를 합해 '튜더 장미'를 만들었다. 이후 장미는 영국의 국화가 됐다. 장미는 귀족 가문을 상징한다. 장미는 결코 서민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다. 장미의 가장 큰 선택은 그 꽃을 보고 달려드는 다수의 사람에게 있지 않고, 아름다움을 나누는 소수의 사람에게 있다. 향기로 유혹하지만, 결코 거저 내주지 않는 장미는 역설적인 통증이다.

▶장미는 정치의 꽃이다. 1908년 3월 여성 섬유노동자 1만5000명이 뉴욕에 모여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세계 여성의 날이 시작되는 사건이다. 빵은 생존권을 이르니 헌사다.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하니 존대(尊待)다. 노동자들은 장미를 받는 것으로 그들 스스로 세상의 일을 선택할 자격을 요구했다. 장미꽃은 5월에 가장 아름답게 핀다. 하지만 5·9장미대선은 아름답고 화려하지만은 않다. 호접지몽(胡蝶之夢)이다. 그저 '한바탕 꿈'이다. 훗날 나비가 되어 장미 꿈을 꾸게 될지, 아니면 삿된 '장밋빛' 꿈을 원망하게 될지는 우리 국민들 선택에 달려있다. 냉매(冷媒)가 필요하다. 장미의 열정은 살리되, 가시 돋친 상처를 치유할 '뜨거움의 냉점'을 찾아야한다. 그런 대통령이 절실하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