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형 ETRI 지능로봇시스템연구그룹 선임연구원
[젊은 과학포럼]

필자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으로서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딥러닝(Deep Learning)' 연구를 하고 있다.

딥러닝 이란 컴퓨터가 많은 데이터를 이용해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정부과제에 선정돼 연구 중이다. 딥러닝 기술은 크게 이미지 처리와 자연어 처리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이미지 처리 분야에서 딥러닝 기술은 이미지 인식 관련 국제 대회(ImageNet Challenge)를 통해 기존 25.8%의 인식 에러를 16.4%(알렉스넷, 2012년)까지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에 따라 딥러닝 알고리즘이 기존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을 이미지 인식에서 압도했다. 가장 최근 대회에서는 딥러닝 네트워크의 앙상블 구조로 이미지 인식 에러가 2.99%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인간보다 컴퓨터가 이미지 인식을 잘 하는 수준에 이른 셈이다.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는 순환 신경망 기술을 이용해 번역 분야 등에서 좋은 성능도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구글의 뉴럴 기계 번역이 지난해 10월부터 실제 서비스에 들어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재 딥러닝 기술은 위의 두 분야에 국한돼 있지만, 필자가 하는 연구는 좀 독특하다. 딥러닝을 이용해 멀티미디어 스트림을 설명하는 설명문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본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다. 물론, 가장 높은 수준의 딥러닝 기술을 필요로 함은 불문가지다.

이렇게 도전적인 연구 주제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연구주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도전성을 장려한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파고 이후 부쩍 높아진 인공지능과 딥러닝에 대한 관심 덕분에 정부에서도 큰 규모의 연구 자금을 해당 분야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연구하는 분야에 지원이 많다고 마냥 만족하기는 좀 이르다. 딥러닝 연구의 대가들은 꽤 오랫동안 이어진 신경망의 암흑시기를 버텨내며 꾸준히 연구를 해온 연구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도 딥러닝과 관련해 좋은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 순간 불어온 일종의 바람 덕분에 과제가 형성되고 지원 되서는 안될 일이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성과를 재촉하거나 과제중단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설정한 주제를 꾸준히 연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부 지원과 정책, 그리고 국민의 응원이 꼭 필요하다.

딥러닝 연구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과학 분야의 출판 전 논문을 수집하는 오픈 엑세스 웹사이트(Arxiv)에는 매일 세계 유수의 기업, 연구소, 대학에서 논문이 쏟아진다. 발표된 논문의 알고리즘 역시 누군가 매우 빠른 속도로 구현해 모두가 볼 수 있는 오픈 소스 코드 저장소(Github)에 공유한다. 비단 딥러닝 뿐만 아니라 한참 발전 중인 연구 주제에 대해 세계 연구의 방향을 따라잡고 새로운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민첩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연구기획의 방향성 정립과 전략수립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선이 코앞이다. 차기 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반영해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장기 발전방향이 세워지길 기대해 본다. 연구자의 자율성 보장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과학기술정책이 수립돼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의 연구자 주도적 주제 설정을 지원하고, 이에 따라 연구자들이 책임감 있는 연구로 화답할 때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와 가능성이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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