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희·대전본사 정치사회부
[기자수첩]

헌정사상 처음 조기대선으로 치러지는 ‘5·9 장미대선’의 후보들이 너도나도 4차 산업혁명을 핵심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그러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일제히 대선국면을 이용해 4차 산업혁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사업의 대선공약화 작업에 발 벗고 나섰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전은 ‘4차 산업혁명 특별시’, 대구는 ‘로봇혁신센터’, 광주는 ‘인공지능 중심 창업단지 조성’을 제시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란 거창한 이름만 붙였을 뿐 지역사업의 내용은 오십보백보다. 지자체별 사업마다 4차 산업혁명 기능 수행을 위한 센터나 단지를 내세우면서 전국에 유사한 사업들이 넘쳐나게 생겼다. 지자체는 예산 확보를 위해, 대선 후보는 지역 표심을 노려 지역사업을 공약으로 채택하는 이런 행보는 전혀 낯설지 않다.

탄핵이라는 불명예로 마침표를 찍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외치며 지자체마다 세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들어선 지역센터와 중복된다는 여론의 날선 비판을 수용하지 않은 채 건물 세우기에만 급급하더니 결국은 최순실과 재벌세력의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권마다 세운 창업보육센터, 테크노파크, 혁신센터, 혁신클러스터, 연구개발특구 등 지역거점지에 대학별 지원센터와 정부출연연구소 지역분원까지 더하면 대한민국은 껍데기뿐인 ‘공약(空約)’의 산물들로 포화상태다.

혁명이란 말이 나오기 무섭게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일단은 짓고보자는 발상이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혁명의 아이콘이자 롤모델인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1939년 휴렛과 팩커드가 스탠퍼드 대학의 한 허름한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 낳은 지역센터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설 모습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무형자산 간 융합이 핵심인 4차 산업혁명은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부동산 혁명이 아니다. 새로 들어설 정권의 지역거점 타령 속에서 센터 짓기에 급급한 대한민국은, 그리고 대전은 언제쯤 혁명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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