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전국 곳곳에 대통령 입후보자 홍보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나붙으니 대선열기가 실감난다<사진>. 한참을 서서 찬찬히 들여다본다. 마흔이 넘으면 얼굴과 인상이 살아온 이력서라던데 열다섯 후보들의 지난 시절 나름 영욕에 찬 삶의 도정이 언뜻 내비치는 듯하다.

기억나는 최초의 대선 벽보는 1963년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맞선 5대 선거였는데 인물사진의 비중이 컸고 명료한 구호를 크게 부각시키면서 약력 등은 상대적으로 작게 표시했다. 지금처럼 국민들의 정치 감각이나 정보 소통력이 높지 않았던 시절인 만큼 시각효과를 염두에 두고 자극적이고 호소력 있는 구호로 승부를 걸었던 듯하다. 1971년을 마지막으로 1987년 직선제가 부활될 때까지 체육관 선거에서 포스터는 사라졌다. 그 후 30년, 선거벽보의 수준향상이나 디자인의 세련, 카피의 소구력 등은 그간 우리 사회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집약한다. 디자인이 경쟁력이고 국력이 된 이즈음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상적인 포스터로 과시하려는 듯 각 후보 진영에서는 오프라인에서는 물론 SNS에서도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와 튀는 디자인으로 표심을 공략한다.

19대 대선에 이르는 동안 디자인은 고급스러워지고 문구 역시 나날이 깔끔해지는데 벽보의 기본구도는 거의 변함이 없다. 큼지막한 후보자 사진에 대표 슬로건, 소속당 로고와 약간의 부대사항으로 채워지는 만큼 다른 매체로 접하게 되는 내용에 비해 빈약하다. 각급 선거에서 포스터 인쇄와 부착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도 그렇고 선거후 뒷처리 역시 만만치 않다. 휴대전화 5000여만 대의 디지털 시대, 벽보는 큰 종이 한 장에 적절한 비율로 나누어 후보자 얼굴과 대표구호, 소속정당만을 밝힌다면 예산절약, 환경보호, 벽보훼손 시비 같은 여러 문제점이 해소되련만 포스터 앞에서 후보자들의 면면을 훑어나가는 일은 힘들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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