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투데이춘추]

국민의 반댓말은 무엇일까. 흔히 외국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비국민이라는 말도 있다. 외국인이 국민에 대한 외부자를 뜻한다면 비국민은 국가 내부에서 특정인들을 테두리쳐 하는 말이다. 국민을 위하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어느때보다 더 높다. 혹여 그들이 외치는 국민이라는 말이 비국민의 그림자을 짙게 드리우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터뷰에 대해 모 방송 앵커가 남긴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탄핵소추의결서에는 한 줄도 들어있지 않은 각종 루머에 대한 답들이 나열됐고 또 다시 분열의 말들은 던져졌다. 그래서 얻고 싶은 자신만의 국민과 어느 사이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비국민. 그러나 이 모든 시도들도 조금만 길게 보면 부질 없는 것이다.”

자신을 지지하고 따르는 이들만 국민으로 명명하고 그렇지 못한 국민들을 비국민시하는 태도는 정치인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후 각 정당의 후보 경선이 이뤄졌다. 당원 중심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틀에서 벗어나 국민 참여를 광범위하게 보장한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인가. 각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국민경선으로 불렸고, 어느 정당은 완전국민참여경선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이름이 국민 경선이었을 뿐 국민 모두에게 참여가 허용되지도 않았고, 완전히 국민이 참여할 수도 없었다. 예를 들어 교사와 공무원들에게는 국민으로서 성실한 의무 수행과 상관없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할 권리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국민경선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아니 참여가 배제된 사람들은 국민일까, 비국민일까.

비국민. 사전에는 '일제 강점기에 황국신민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통치계급의 관점에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돼 있다. 나무위키라는 인터넷 백과사전도 비슷하게 설명하고 있다.

말의 용례를 살펴보니, 지배자들은 국민을 갈라치고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을 배제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국민임에도 동등한 복지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비국민이 현재도 존재하고, 그들이 현재도 고통과 눈물 속에 있다는 점이다. 지배자(지도자)를 비롯 국민을 구성하는 다수는 늘상 소수를 공격하거나 망각함으로써 차별과 억압을 제도화 한다.

선거때 교사나 공무원들은 졸지에 비국민이 된다. 일체의 정치적 언급이나 행동이 금지된다. 심지어 소셜 미디어의 선거 관련 글에 '좋아요'도 누르지 못하고, 마음에 드는 글을 '공유'하지도 못한다. 일반인만을 생각하며 지어진 건축물과 교통환경은 장애인을 무시로 비국민화 한다. 누런 피부의 한국인을 표준으로 가르치는 교과서는 검은 피부의 한국인을 비국민으로 내친다.

우리 모두는 아무 생각없이 국민을 외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무의식 중에 비국민으로 배제, 공격, 억압하는 이들이 없는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애국과 헌신, 국민의 통합을 원한다면 스스로 '나는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묻는 이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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