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 성거읍에 위치한 국립 망향의 동산에 설치된 ‘일본인 사죄비’가 ‘위령비’로 덧대어 설치된 사실이 확인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진은 일본인이 최근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위령비’ 석판 모습. 당초 이 곳에는 태평양전쟁에서 조선인을 강제징용하고 위안부 동원 임무를 맡았던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 씨가 1983년 12월 설치한 사죄비가 있었다. 사진=천안 이재범 기자.
천안 성거읍 소재 국립 망향의동산에 있는 ‘일본인 사죄의 비’가 최근 ‘위령비’로 덧대어 설치된 사실이 확인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3일 천안서북경찰서와 국립 망향의동산관리원(이하 관리원)에 따르면 관리원은 11일 오후 3시경 망향의동산 무연고 묘역 내에 있는 ‘일본인 사죄의 비’가 ‘위령비’로 교체된 것을 확인,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위령비’에는 ‘일본국, 후쿠오카현·요시다 유우토’라는 한글 문구가 새겨졌다. 가로 120cm, 세로 80cm의 기존 표지석 상판을 ‘위령비’로 덧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 비석은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을 강제징용하고 위안부 동원 임무를 맡았던 요시다 세이지 씨가 참회의 뜻으로 1983년 12월 15일 세운 것이다. 요시다 씨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일본인 요시다 에이지 씨는 지난 5일 국제우편을 통해 표지석 상판을 바꾼 사실을 망향의 동산 측에 통보했다. 

그는 A4 용지 2장 분량의 편지에서 “우리 아버지는 징용업무를 한 적이 업고 사죄할 책임이 없다. 위령비가 마땅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죄비에는 아버지 이름이 ‘요시다 세이지’라고 쓰여 있지만 ‘요시다 유우코’가 본명”이라며 “석판변경을 신청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편지 겉면에 자신의 주소를 기재했으며 편지지에는 전화번호까지 적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현재 통역인을 통해 전화통화를 시도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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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천안의 국립망향의 동산에 세워진 강제징용 사죄비 표지석 상판을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위령비'로 바꿔 놓은 것으로 확인돼 13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진은 사죄비 원래 모습(사진 위)과 위령비로 바꾼 후의 모습. ⓒ연합뉴스
관리원 측은 지난 7일 이 편지를 받았지만 담당직원이 휴가 중인 관계로 11일 편지를 개봉했고, 비석이 바뀐 사실을 확인한 뒤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다만, 전문가를 통해 확인한 결과 표지석 교체에 도움을 준 한국인 공범이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관리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관리원 관계자는 “정확한 시점이 편지에 나와있지 않아 섣불리 추정할 순 없지만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 주말 사이에 표지석을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곳에 한 두번 오갔다고 편지에 써 놓은 것을 보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관련, 경찰은 표지석을 바꾼 사람이 공용물건 손상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망향의 동산 내에 설치된 유일한 폐쇄회로(CC)TV가 무연고 유골 묘역과 상당부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게다가 표지석 교체를 주도한 인물들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도 수사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외국인이라도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면서도 “본인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망향의 동산 내 무연고 묘역은 일제에 강제로 징용됐거나 위안부 등으로 끌려갔다가 일본 등 해외에서 원혼이 된 동포들 중 국내·외에 연고가 없는 이들을 모셔 놓은 곳이다. 천안=이재범 기자 news7804@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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