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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 벚꽃이 오늘 졌다. 눈부시게 찬연하던 생명의 소실이 너무도 급박하다. '벚꽃'은 무언가와 결합됐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 바람과 결합하면 '벚꽃 비'가 되고, 달빛과 결합하면 '벚꽃 엔딩'이 된다. 벚꽃은 희로애락의 얼개가 없다. 한순간의 젊음이 별안간 늙어버림으로써 처절하게 생멸을 드러낸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가장 화려하게 웃는다는 건 '반어법'이다. 다른 나무와 달리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질 때쯤 잎이 나오기 때문이다. 죽음으로써,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건 치명적인 은유다. 1주일을 짧게 살다가는 시한부인생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1년을 다시 기다리게 만드는 가장 화려한 희생이기도 하다. 뜨겁게 피고 지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붉은 꽃 없다), 정치와 닮았다.

▶충청도를 기반으로 성공한 정치인은 김종필(부여)과 이회창(예산), 이인제(논산) 정도다. 하지만 이들 모두 1인자는 되지 못했다. 김종필은 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 내리 2인자였다. 이회창은 대선에서 세 번 낙마했고 영원한 3인자로 남았다. 이인제는 이번까지 네 번째 도전이다. 이 대목에서 충청도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몇 가지만 추려보면 이렇다. 충청인들은 똑똑하다. 그런데 무언가를 물으면 '몰라유'다. 꿍꿍이속을 모른다. 좋게 말하면 입이 무거운 것이고, 속되게 말하면 엉큼하다. 솔직하지 못하니 공동체 안에서 딱 중간에 끼여 있다. 단결력도 부족하다. 밀 땐 화끈하게 밀어줘야하는데 주저한다. 좋게 말하면 진중한 것이고 속되게 말하면 간을 보는 것이다. 게다가 야망이 없다. 좋게 말하면 순진한 것이고 속되게 말하면 '다 좋아유'다. 다 좋다는 건, 다 싫다는 뜻이기도 하다. 속칭, 결정 장애다.

▶애향심도 별로다. 전라도나 경상도는 일이 생기면 똘똘 뭉친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형님'하며 콩고물을 챙긴다. 충청도는 '남의 일'은 진짜 '남일'이다. 충청도 양반소리도 비겁한 존대다. 할 말 안하고, 나설 일도 안 나서니 양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충청도가 캐스팅보트 역할 한다는 말도 좋은 말이 아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충청도가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 표가 필요할 뿐이다. 다른 곳은 몰표인데 충청도만 적당히 나눠주니 캐스팅보트다. 속되게 말하면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몰표가 나오는 건 정상이 아니다. 야바위다. 그런데 충청도는 '그것'마저도 못한다. 밀 땐 밀어야한다. 반기문 나가떨어지는 거 구경이나 하고, 안희정 낙마하는 거 지켜보는 게 '대단한' 정치의식은 아니다. 톡 까놓고 말해서 문재인·안철수는 또 다른 경상도 대통령일 뿐이다. 이제 충청도 사람들도 '글쎄유, 몰라유, 괜찮아유'라는 어법을 버려야한다. 정치는 화무십일홍, 뜨겁게 불태우는 맛이 있어야한다. 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것인가.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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