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 청북교회 담임목사
[화요글밭]

평화! 누구나 꿈꾸며 기대하는 세계관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웠다고 회자되는 한 시기가 로마제국의 시대일 것이다. 그 시대를 '로마의 평화'(Pax-Romana)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면 그때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로마의 강한 군사력, 경제적인 힘, 법률적인 제도, 문화적인 융합이 어우러져 평화롭기는 했지만 이베리아 반도, 갈리아와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 팔레스타인 등에서의 정복 전쟁과 독립을 위한 반란들이 제국의 역사 내내 있었다.

우리는 보통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말하지만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모든 길은 로마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로마에서 시작돼 제국의 구석까지 혈관처럼 뻗은 도로들을 통해 로마는 반란 지역에 신속하게 도달해 가차 없이 제압해 힘의 우위로 평화를 유지시켰다. 참된 평화의 시기라고 말할 수 없다.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게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인 다윗과 솔로몬 왕의 시대 80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늘 약소국이었다.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주변의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헬라, 로마 등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해 속국이 되거나 식민지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민족도 열강의 틈에 놓여서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전쟁을 치르면서 생존한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 국가들과 일본의 침략에 의해 늘 전쟁의 위협 속에 놓여 있던 나라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은 비슷한 인사를 한다. 우리는 "안녕하십니까", "밤새 별고 없으십니까"하고 지난 밤에 무슨 변고를 겪지 않고 무사했는지 묻는 인사를 한다. 이스라엘인들은 '샬롬'(shalom)이라고 인사한다. 짧은 의미로는 평안을 비는 인사지만 신앙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위로와 '온전한 평안'이 함께 하기를 빈다는 기원을 담은 인사말이다. ‘안녕’과 ‘샬롬’, 정서적으로 공감을 이룰만한 인사다.

요즘 우리는 풍부한 나라와 시대에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지금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운 때가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마음은 늘 조마조마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안녕을 잃었고, 샬롬의 상태를 상실했다. 누구의 책임을 묻기 전에 대내외적인 시대적 상황들이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평화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그런 사람과 제도, 힘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단정 지어 말하기 미안하지만 전혀 그럴 수 없다.

샬롬은 아무 것도 잃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함은 진정한 평화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소극적이고 짧은 평화일 뿐이다. 온전한 평화, 샬롬의 나라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야 만들어진다. 샬롬은 갈등이 일어난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화해시키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평화가 파괴된 곳에서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있을 때 샬롬의 나라는 온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각 개인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 maker)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샬롬의 나라는 지도자 한 사람 교체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와 평안을 갈망하는 국민이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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