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낱말속 사연]

한식(寒食).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양력으로 4월 5일쯤이다. 찬밥을 먹는 날이지만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다. 명절에 찬밥을 먹다니… 불을 사용할 수 없어 밥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사연은 이렇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개자추(介子推)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진 헌공이 여희(헌공의 비)의 꾐에 속아 태자를 죽이자 둘째 아들 중이(重耳)에게도 화가 미칠 판이였다. 중이는 계모 여희의 학대를 피해 다른 나라로 피신이 불가피했다. 이때 개자추가 수행했다. 풀만으로 연명하던 중이에게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여 주는 등 춥고 배고플 때 한몫을 했다. 이른바 할고봉군(割股封君).

19년 망명 끝에 귀국한 이는 문공으로 등극, 권력을 잡았다. 논공행상에 따라 수행신하들이 관직에 봉해졌다. 그러나 개자추는 공로를 과대 포장하는 신하들을 보고 부화뇌동하기 싫은 데다 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구실을 들어 낙향, 어떤 공로도 받지 못했다. 문공은 개자추의 효심에 감동해 곧 부를 테니 고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림에 지친 개자추는 문공을 원망하며 신하되기를 포기했다. 뒤늦게 개자추가 생각난 문공은 신하를 보내 입궐을 권했다. 이러기를 몇 차례, 그러나 개자추가 거절하자 끝내 문공은 직접 찾아왔다. 이를 미리 알고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으로 들어가 숨었다. 개자추가 입산한 것을 확인한 문공은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산불. 그러나 3일 동안 면산이 모두 탔지만 개자추는 나오지 않았다. 동굴에서 어머니를 끌어앉고 숨져있었다.

문공은 개자추 모자를 기리기 위해 '불을 지는 날, 불을 사용하지 마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니 밥을 지을 수 없었다. 결국 찬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날을 한식(寒食)이라 했다. 이후 문공은 불에 탄 면산의 나무로 나막신을 만들어 신었다.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를 듣고 개자추의 충성심과 효심을 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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