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국가핵융합연구소장
[시선]

중국의 과학 성장세가 가파르다. 2015년 중국국적의 첫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는가 하면, 중국의 항공·우주 기술이 이미 미국과 대등하다는 기사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기술 중 슈퍼컴퓨터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는데, 미국의 슈퍼컴퓨터 성능분석 회사 '톱스500'에 따르면 중국 슈퍼컴퓨터 '톈허2'가 미국을 제치고 2013년부터 3년 동안 처리 속도 1위를 지켰다고 한다.

중국의 슈퍼컴퓨터 발전은 단지 기술의 발전에 그치지 않는다. 슈퍼컴퓨터는 시뮬레이션을 통한 연구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기초 과학 발전이 속도를 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중성미자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가지타 타카아키가 "슈퍼컴퓨터 덕분에 노벨상을 탈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과학에서의 슈퍼컴퓨터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더욱 슈퍼컴퓨터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는 사실상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기틀로, 인간이 지닌 물리적인 한계를 보완하며 정확한 결과를 단기간 내 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핵융합 분야 역시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 분야 중 하나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지난 2011년 핵융합 시뮬레이션 연구용 슈퍼컴퓨터를 구축해 핵융합 연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코드 개발을 시작한 바 있다. 핵융합과 같이 거대 연구시설을 필요로 하는 연구 분야는 직접 장치를 활용하기 전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면 실험 성공률이 높아 연구에 효율성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에서는 이를 활용, 핵융합 플라즈마에서 발생하는 난류, 플라즈마 불안전성 등의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연구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난제들을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해결 방법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핵융합 분야에서도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버추얼 머신을 활용한 연구를 비롯해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인공지능 및 사물 인터넷 기술과의 연계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곧 다양한 산업과 과학과의 융합을 뜻하며, 핵융합 연구자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핵심 인력들과의 협업 역시 필수적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핵융합연구장치인 KSTAR라는 훌륭한 하드웨어를 구비한 덕분에 핵융합연구 선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제 2번째 도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이 하드웨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뛰어난 소프트웨어의 마련이다. 결국 KSTAR와 같은 최첨단 장치를 활용해 물리 이론을 개발하고, 모델링 분야 연구를 강화할 수 있는 고급 인력과 슈퍼컴 등 연구 인프라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아가 국제 공동으로 건설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에서도 플라즈마 연구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대용량 시뮬레이션 코드 개발과 이론적 해석 능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핵융합분야 만이 아니다. 다른 거대과학 분야에서도 4차 혁명을 이끌기 위해서는 소프트 파워로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것은 결국 인간의 창의성과 이를 각각의 산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융합하고 협력하고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한발 앞선 준비는 바로 이러한 소프트 파워인 '인재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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