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봄이다. 춘분을 지나며 날씨 또한 몰라보게 따뜻해졌다.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계절의 변화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겨우내 중단했던 새벽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가족들도 드디어 동면에서 깨어났냐며 웃음으로 반긴다. 아직 쌀쌀한 이른 아침의 도로를 달리며 생각해 본다. 보령 수부리 산골이 온통 벚꽃과 연산홍으로 물들기까지 이제 며칠이나 남았을까? 봄님의 빠른 북상을 두 손 들어 반기면서도,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가뭄이라는 끈질기고 반갑잖은 걱정거리 때문이다. 보령댐의 수위가 역대 최저치를 향하고 있다. 저수율은 15% 이하로 떨어졌다. 저수량 또한 예년의 36퍼센트 밖에 안 된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 강수량은 1,150mm다. 예년의 79%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상청 장기 기상예보에 따르면 오는 5월까지 별다른 비를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령댐이 충남 서부지역 8개 시·군의 가장 중요한 취수원인 까닭이다. 이 댐이 광역상수도시설을 통해 공급하는 물은 하루 20만㎥에 이른다. 또한, 댐에서 하류로 흘려보내는 물은 농사와 보령화력발전소 등 중요 산업시설 가동에 꼭 필요하다. 즉, 급수지역 주민의 일상과 지역경제에 이르는 모든 것이 보령댐의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댐 수위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물 관리 당국이나 지역사회 등의 걱정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보령댐 유역의 가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년을 연속해서 겪고 있는 지독한 가뭄이다. 2015년 말에는 제한급수 상황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렇지만 수위나 저수율을 비롯한 수치상 상황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뭄의 고통을 덜어줄 아주 효과적인 대책이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보령댐 도수로다. 이 시설은 2015년 말 보령댐 준공 이후 처음 맞은 저수량 고갈이라는 재난상황 때문에 건설되었다. 22㎞의 관을 통해서 하루 최대 11만5천㎥의 부여 금강 물을 보령호로 공급할 수 있다. 당시의 상황이 워낙 심각했기에, 한겨울 혹한을 무릅쓰고 도수로 건설에 매달렸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금강물의 보령호 유입에 따른 수생태계 변화 등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철저한 대책이 마련돼 있다. 조류(藻類)나 부유물질 유입을 원천적으로 막는 조류차단막과, 1,000분의 5mm의 아주 작은 알과 치어까지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설치돼 있다. 방류지점에는 맑은 공기를 주입하는 폭기시설과 암모니아성 질소 같은 오염 물질까지도 줄여주는 시설 등이 구비돼 있다. 최종 방류된 물은 보령호로 들어오기까지 약 7㎞의 하천을 통과하면서 자연정화과정도 거친다.

무엇보다, 도수로는 상시 가동시설이 아니다. 가뭄 경계단계에 진입해야 가동되는 비상시설이다. 위기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가동되지 않을수록 더욱 바람직한 아이러니한 시설이라고 할까. 도수로를 가동하면 보령댐의 용수공급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이번 가뭄이 도수로의 역할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도수로는 단지 용수공급을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한 만큼, 생활 속 물 절약 실천을 위한 지역사회 등의 적극적인 참여는 앞으로도 꼭 이어져야 한다. 가뭄은 자연현상이다. 변화를 견디고 적응하고 이겨내는 일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어떠한 자연재난도 극복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물 사랑과 물 절약 실천에 더욱 애쓰자. 봄꽃 너머 단비의 태동을 느껴보는 뜻깊은 봄날이다.

이용일<K-water 보령권관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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