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채
[낱말속 사연]

탕평채. '청포묵'이란 음식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한자어로 '탕평채(蕩平菜)'다. 여기서 '탕평(蕩平)'을 주시하자.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이란 구절이 ‘서경’에 나온다. 후세인들은 이를 줄여 '탕탕평평'이라 했다. 임금은 정치 논쟁이나 시비에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공평해야 함을 뜻한다. 여기서 '탕평채'라는 음식명이 유래됐다.

대체적 음식이름은 재료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탕평채는 앞서 보듯 재료와는 전혀 관계없이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왜 그럴까.

조선 영조(1724년)는 붕당정치에 따른 갈등과 대립, 정쟁의 문제 해결을 위해 칼을 들었다. 이른바 탕평책(蕩平策)이다. 당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인재를 뽑겠다는 정책이다. "나는 마땅히 인재를 취해 쓸 것이니 당의 이해관심에 근거해 추천하면 뽑지 않고 귀양 보낼 것이다"<영조실록>

탕평책을 신하들과 논하는 어느 날, 수라상에 청포묵과 김, 실고추, 미나리 등 다양한 색깔의 온갖 재료들이 혼합된 요리가 처음 올라왔다. 영조는 이 음식이 무엇이냐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미처 요리이름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조는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탕평책의 '책'을 '채'로 바꿔 '탕평채'라 했다.

먹기 전에는 각 재료들의 선명성이 부각되지만 먹을 때는 하나가 된다는 점이 마치 붕당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선발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청포묵의 흰색은 서인, 고기의 붉은 색은 남인, 김의 검은색은 북인,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영조 시대 좌의정을 지낸 송인명이 작명자라는 역사적 기록도 있다. 송인명이 저잣거리를 지나가다 골동채(잡채 일종)를 보고 사색(四色)을 섞는 탕평책을 연상했고, 그 골동채가 수라상에 올라온 음식과 유사해 수라상 음식을 탕평채라 했다고 한다. <송남잡식·宋南雜識>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