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는 유관순(1902~1920) 열사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유 열사의 서훈 등급은 고작 '3등급'에 불과하다. 유 열사의 역사적 공적과 국민적 인식도에 비해 현격하게 저평가돼 있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간 여러 차례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아직껏 햇빛을 보지 못해 안타깝다. 천안시의회가 유 열사의 서훈등급 상향조정을 위한 건의문을 채택한 것도 그래서다.

유 열사가 '한국의 잔다르크', '3·1운동의 꽃'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명백하다. 유 열사는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벌였고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인 천안에서 3000여명을 모아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유 열사는 천안·연기·진천·청주 등지의 학교와 교회를 돌며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전국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된 계기가 됐다. 일본 경찰로부터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옥중에서도 만세를 부르다가 최후를 맞았다.

선열들의 역사적 공적을 등한시하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꿴 데서부터 사달이 생긴 것이다. 1962년 독립유공자의 훈격을 결정한 이래 이를 그대로 고수한 탓이다. 상훈법에는 심사과정에서 공적이 과대 또는 과소 평가됐더라도 이를 정정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여기에다 우리 사회에 유 열사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왜곡된 인식이 잔존하고 있다. 일부 교과서에 유 열사를 기술하지 않아 기념사업회, 시민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뒤늦게 이를 수정하긴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래도 대다수 국민은 유 열사가 남긴 3·1정신을 통해 애국 애족의 정신, 정의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불굴의 의지를 배운다. 요즘 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하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만을 앞세운 채 책임을 떠넘기는 극도의 개인주의 세태에 경종을 울려주기에 충분하다.

이제라도 실상을 바로 잡는 게 옳다. 우선 불합리한 상훈법부터 개정하는 것이 순서다. 이 법안에 서훈 등급을 변경할 수 있는 근거와 절차를 새로이 규정하면 된다. 2015년 상훈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이를 다시 추진하자. 정치권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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