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茶山 정약용은 정조와 함께 살고, 정조의 죽음과 함께 몰락했다. 다산의 후견인이었던 정조가 승하한 후 신유사화가 일어났고, 남인의 탄핵으로 측근(자)들이 줄줄이 참화 당했다. 兄 정약종은 참수됐고 약전은 완도,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됐다. 귀양살이는 무려 18년 동안 이어졌다. 헛헛한 세월이 무심하게 흐르던 어느 날, 아내 풍산 홍 씨가 빛바랜 다홍치마를 보내왔다. 시집 올 때 입었던 옷인데 애틋한 그리움을 우회적으로 함의한 것이다. 다산은 치마를 잘라 두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 집은 망한 가문, 폐족(廢族)이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책을 읽는 것밖에는 없다." 죄인이 아니면서, 죽는 날까지 폐족으로 살았던 다산은 목민(牧民) 위에 민본(民本)이 있음을 설파했다. "통치자는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풍류시인 김병연(김삿갓)이 여섯 살이던 1811년, 홍경래의 난(농민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가산 군수는 포로가 되어 죽임을 당했으나, 선천 부사였던 조부(祖父) 김익순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투항했다. 조정(朝廷)은 김익순을 참형했고, 동시에 폐족했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란 김삿갓은 '농민전쟁 당시 가산군수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는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급제했다. 김삿갓의 1등 답안은 '한번 죽어서는 그 죄가 가벼우니 만 번 죽어 마땅하다'였다. 그러나 뒤늦게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는 벼슬길 대신 천형의 방랑생활을 택했다. 그는 죽장에 삿갓 쓰고, 미투리 신고, 산수를 넘나들며 죽는 날까지 폐족의 삶을 살았다. 그의 해학은 웃음이 아니라 울음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어느 꽃도 영원히 붉을 수 없다. '자연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왔다. 웃으며 떠났던 그 골목에 웃으며 다시 나타난 것이다. 장삼이사들이 손가락질을 했다. '어라, 웃는 것 좀 보소. 누가 보면 막 당선된 사람인줄 알겠어.' 조작된 금의환향은 반전이 아니라, 암전이었다. (진실은 무엇일까) 그는 진짜로 웃었던 것일까. 단언컨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났을 것이다. 칠성급 호텔(푸른 기와집)에 살던 사람이 별안간 쪽방신세가 됐는데 웃음이 나올 리 없다. 어쩌면 지지자들과 웃고 헤어진 그날 밤, 입을 막고 펑펑 울었을 지도 모른다. 폐족의 울음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멸문(滅門)의 길을 간다. 초대 이승만은 하와이로 쫓겨났고, 박정희는 총탄에 맞았다. 김대중은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전두환은 백담사로 유배됐고, 노태우는 철창에 갇혔다.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의자 박근혜’는 어찌될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보통의 것엔 관대하지만 거짓말만큼은 절대 못 참는다. 여우의 웃음과 악어의 눈물에 수없이 속아왔기 때문이다. 벚꽃 경선을 거쳐, 이번 장미 대선엔 백성을 내려다보는 목민(牧民)이 아닌, 백성을 올려다보는 민본(民本)을 뽑자.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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