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 충남도 소방본부장
[투데이춘추]

불이 나면 119로 신고하기, 소화기나 소화전으로 불끄기, 주변 사람들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리기, 피난하기 중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까?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이다. 피난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핀 후 불을 끌 것인지 우선 피난부터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이 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알려야 하고, 가능하면 빠른 시간에 119로 신고도 해야 한다. 화재발생 사실을 최초로 인지한 사람이 여럿이면 위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알맞은 대응방법이다.

그럼 우리는 그렇게 하기 위한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실제 상황에서 이상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평소에 실시하는 연습을 훈련이라고 한다. 따라서 실제상황과 유사한 조건일수록 훈련의 효과는 높아진다. 음악공연에서 연주를 잘 하기 위해서는 연주할 곡을 공연 전에 반복해 연습한다. 연습상황은 공연실황과 관객이 없다는 것만 다를 뿐 연주하는 레퍼토리와 합주에 참여하는 사람은 같으므로 실제상황과 유사하다.

화재를 비롯 재난은 대응역량을 높이기 위한 훈련을 위해 실제상황과 유사한 조건을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전투나 범죄대응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불이 났다고 치고’라는 단서가 훈련상황 설정의 기초가 된다. 어디서 불이 어떻게 났다고 가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미리 정해놓고 그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이 지금까지 실시되어온 소방훈련 방식이다.

화재는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유형에 따라 우리는 먼저 소화기나 옥내소화전을 사용해 불을 꺼야 할 때도 있고, 119에 신고를 해야 할 때도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화재발생을 알려야 할 때도 있고, 우선 피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서의 적절한 행동이 무엇인가를 침착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역량을 갖추도록 설계된 훈련이 도내 각 소방서에서 실시하고 있는 ‘무각본소방훈련’이다. 훈련이 실시되는 날짜만 정해놓고 몇 시에 어디서 어떻게 화재가 발생하는지를 훈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알지 못한 가운데 실시하는 방식이다. 소방관들이 기습적으로 작동시킨 연기발생기에 의한 연기로 화재발생 사실을 인지하고 각기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해 움직여야 하고, 소방관들은 이를 평가한다.

무각본소방훈련을 실시해 본 결과 훈련의 효과는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발생한다는 것 관찰할 수 있었다. 훈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훈련에 임하기 전에 자기 자리에서 동원할 수 있는 소화기는 어디에 몇 개가 있는지, 옥내소화전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사용하는지, 119에 신고는 어떤 요령으로 해야 하는지, 피난의 요령은 무엇인지를 미리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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