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려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문서를 쓴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풍악문답'이란 책을 썼던 청음 김상헌 선생은 무능한 나라 꼴을 보고 그렇게 절규했다.

석달째 이어온 탄핵시국으로 온 나라가 하 수상(何 殊常)하다. 정치·외교, 국방, 경제, 사회 어느 하나 온전한 곳이 없다. 조기 대선을 전제로 대선후보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각자도생이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중, 한·일 관계도 뒤틀릴 대로 뒤틀린 상태다.

이복형 살해 및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 등 철없는 김정은의 도발과 엽기적인 행태는 한반도에 전운을 드리우고 있다. 장기적인 침체로 나락에 떨어진 경제는 회생불능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탄핵 인용과 기각을 둘러싸고 사회는 분열되고, 국론과 민심도 사분오열이다. 박근혜 정권 4년은 그야말로 비정상 행태의 총합이다.

남녘 제주에선 이미 화신(花信)이 들려오고, 남도의 길목에도 매화가 피어나건만 봄이 봄 같지 않으니, 서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으니 많은 국민들이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닭이 울면 아침이 온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직도 칠흑 같은 암흑 속에 갇혀 있다. 우리 사회 청춘 군상 앞에도 짙은 어둠뿐이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모두 포기한 ‘칠포세대’는 우리사회의 미래가 얼마나 어두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죽하면 ‘일찍 취업해 월급받아 장가가자’는 일·취·월·장이 취업준비생들의 건배사로 쓰이고 있겠는가. 날로, 달로 나아지고 발전하기를 염원하는 ‘일취월장(日就月將)’은 한낱 희망사항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만큼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민 모두가 진정 봄을 기다리고 있지만 봄은 아직도 저 멀리서 제자리를 맴도는 형국이다. 무지렁이 최순실이 집어삼킨 이 나라의 현실은 패권적 대통령제가 낳은 적폐의 무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의 경제보복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불구경이다.

'낡은 말뚝도 봄이 돌아오면 푸른빛이 돌기를 희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제 정치가 '국민의 봄'을 만들어야 한다. 멍들고 상처입은 국민들의 가슴에도 봄 햇살이 내려쬘 때, 비로소 버들잎도 가지마다 푸르고 복숭아꽃 또한 송이송이 붉게 피어날 수 있다. 그리해야 '봄이 오니 진정 봄 같다'는 춘래여진춘(春來如眞春)을 실감할 수 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밝았다. 오늘 오전 11시 탄핵열차가 종착역에 다다른다. 문제는 탄핵 심판 결과에 대한 승복이다. 탄핵 인용을 원하는 쪽이든, 기각을 원하는 쪽이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의 법치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지금도 "이게 나라냐?"는 비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또 다시 좌우로 나뉘어 대립한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 “이게 나라다”는 가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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