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최순실은 허상이 아니다. 꾸며낸 픽션도 아니다. 실존인물이다. 국가와 국민을 농락하고 조롱한 실제 마녀 이야기다. 바보 같은 대소 신료들이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무지렁이 기업들도 돈줄을 대며 머리를 조아렸다. 뒷배를 봐준 사람이 없었으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미치지 않고서야 장관과 수석(首席)들을 갖고 놀면서 국가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없다. 만약 서민이 '최순실 같은 짓'을 저질렀다면 어찌됐을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벌써 단두대에 끌려갔을 것이다. 힘없고 빽(background)없는 서민은 죄를 묻는 동시에, 죗값을 치른다. 만약 서민이 '뇌물'을 받아먹었다면 어찌됐을까. 뼛속 깊이 숨겨둔 10원짜리 하나까지도 톡톡 털어갔을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법이다.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전두환 정권은 재임기간 재계에서 9500억원을 거둬들였다. 전두환이 직접 상납 받은 것만도 2000억원이 넘는다. 노태우 역시 재벌기업에서 285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 2002년엔 한나라당에서 차떼기(2.5t 트럭 째 현금 운반)로 823억원을 받았다. (민주당은 114억원을 받았다) '차떼기당'을 구한 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였다. 그는 여의도에 천막 당사를 만들고 몰락하던 당을 구해내며 총선까지 승리했다. 어쩌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한방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15년 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박잔다르크'라 불리며 당을 구했던 사람이 '최순실'이라는 악녀와 함께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 고약한 데자뷔다.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초침이 째깍거리며 종점을 향해 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코앞이다. 문제는 분열이다. 인용(認容)이 되든, 기각(棄却), 각하(却下)가 되든 나라는 또 한 번 뒤집힐 것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사인(私人) 박근혜'로 신분이 바뀌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성난 태극기'가 광장에 물결칠 것이다. 반대로, 기각이나 각하가 되면 대통령이야 직무에 복귀하겠지만 '성난 촛불'이 광장에 휘몰아칠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정(性情) 상 양측 모두 순순히 승복할 리 만무하다. 성난 촛불과 태극기는 피와 눈물이다. 순교가 아닌 자결이다. 결론적으로 탄핵이 되도, 탄핵이 되지 않아도 문제다. 어쩌면 탄핵 받아야할 대상이 '국민'인지도 모른다. 탄핵이 인용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승리가 아니라 최순실의 승리가 될 것이고, 인용된다 해도 '촛불'은 '태극기'를 넘어야한다.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촛불이 바람에 의해 타오른다. 광장 사이, 촛불과 태극기가 중첩돼있다. 촛불이 태극기 바람에 꺼지고, 태극기가 촛불에 타버리는 이념의 분열은 애국이 아니라 광기다. 역풍을 조심하라. 촛불과 태극기는 바람에 의해 존재성을 갖는다. 촛불은 '빨갱이'이고 태극기는 '꼰대'라고 생각하는 이 나라가, 참으로 한심하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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