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화요글밭]

우리나라는 지독한 가난을 극복한 나라다. 과정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현재 연간 무역 규모가 1조 달러에 근접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자식에게 더 이상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없다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 속에 자기희생과 자식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5년 말 기준 1만 4181톤(경수로 6457톤, 중수로 7724톤)의 사용후핵연료가 각 원자력발전소 임시 저장조에 저장돼 있다. 원자력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남은 부산물이다. 사용후핵연료는 매우 오랫동안 열과 방사능을 내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과 체계를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원자력이용국가들은 자국 사정에 적합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과 체계를 갖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그 기간이 길기 때문에 원자력의 혜택을 본 세대가 그 혜택의 수준이 현저히 낮아지거나 없어지는 후세대까지 부담을 떠안기는 세대 간 불공평을 초래한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관리 시설이 들어서는 곳과 나머지 지역 사이에도 불공평을 가져온다. 이런 윤리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는 각국 전문가들과 다른 국제기구들과의 열띤 논의를 거쳐, 1995년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 관리 원칙 9개를 공포하였다.

그 중 하나가 후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력의 혜택을 누린 현세대가 후세대와 그 세대가 살아갈 환경에 미치는 사용후핵연료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후세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때 기술적 제약이나 재정적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도록 현세대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원자력이용국가들은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재원을 관련 규정에 따라 적립하고 있으며, 후세대와 환경 보호를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지 않고 직접 처분할 경우, 최종 처분량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10~20 km2(302.5~605만평)의 처분장 부지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765㎸ 송전탑 하나 세우기 위한 200평 남짓의 부지 확보도 쉽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 드넓은 부지를 찾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우리나라 원자력안전법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심층처분시설의 안전성이 1만년 동안 유지될지 평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입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이외에도 사용후핵연료의 안전 관리를 위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후핵연료 기술개발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도하고 있다. 최근 방사성폐기물 무단 폐기 등 불미스런 일들로 인해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이에 덩달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수행하는 사용후핵연료 기술개발의 타당성과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안전을 위해 원칙과 규정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한 원자력 계에서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재발 방지와 신뢰 회복을 위해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철저한 반성과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그 기술이 위험하다고, 비용이 많이 들 것 같다고 사용후핵연료 기술개발을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세대의 의무를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후세대에게 막중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 속에 사용후핵연료 기술개발에 대해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만 우리 자식과 그 후손이 사용후핵연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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