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또 다시 방사성폐기물(방폐물)을 외부로부터 대량 반입해 시민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중·저준위 방폐물의 물리 화학적 특성분석 연구를 위한 것이라지만 반입물량이 83개 드럼으로 적지 않은데다 반입 사실 공개 시점도 늦었고 통보대상기관 또한 형식상 절차를 갖추기 위한 의례적인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구원은 어느 때보다도 자중해야 할 처지다. 현재 연구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특별검사를 받는 중이다. 금산지역에 방사성콘크리트를 불법 매립하는가하면 방폐물을 허가범위보다 많이 녹였고 폐기물 소각시설 배기가스 감시기 측정기록까지 조작한 것으로 지난 9일 밝혀져 시민의 공분을 사고 있던 터였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주목하는 것은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는 연구 환경 그 자체에 있다. 과연 연구원이 원자력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느냐는 원천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관리 감독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역할에 의구심이 증폭되는 이유다.

대전시가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대전시가 연구원의 방폐물 진출입을 점검할 수 있는 '진출입 차량 방사능 측정 감시시스템' 구축을 촉구한 것은 사안의 중대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원자력안전에 대한 시민 불신과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별다른 안전대책도 없이 방폐물을 반입했으니 그럴만 하다. 유성구청, 대전시의회, 시민사회단체가 잇따라 시민 안전 저해행위로 규정짓고 즉각 반환을 촉구한 것은 당연하다.

연구원은 지난날 30년간 수시로 고준위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봉까지도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말썽을 빚었다. 1987년 4월 고리발전소에서 폐연료봉 179봉을 들여오기 시작한 이래 총 21차례에 걸쳐 폐연료봉 1699봉을 들여왔다. 심지어는 손상된 핵연료 309개를 대전으로 옮겨왔다. 당초 발생지역으로 이를 반환한다고 약속했으나 그 전망이 불투명하다.

대전에서는 크고 작은 원자력 사고가 12건이나 발생했다. 인구밀집지역이 사실상 방폐장이나 다를 바 없다. 중·저준위폐기물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고, 고준위폐기물은 4.2t이나 보관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치단체가 관련 정보에 깜깜이거나 이를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맹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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