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시범케이스는 단번에 '여럿'을 잡기 위해 '하나'만 족치는 전술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야비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모범'적인 것을 '시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범적이지 않은 시범이기 때문이다. 장점은 조직 관리에 있어서 리스크도 적고, 후폭풍도 약하다는 점이다. 시범케이스를 내세우면 공포가 전이되며 삽시간에 기강을 잡을 수 있다. 타깃이 된 사람은 아주 죽을 맛이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속으로 웃는다. 그런데 시범은 시범으로만 끝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비열함이 조직을 들쑤셔 조직이 물렁해지기도 한다. 군기의 유효기간은 짧다. 잠시 납작 엎드려 있을 뿐 스멀스멀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기막힌 관성이다.

▶삼성은 구속되지 않는다는 신화가 무너졌다. 거대 재벌의 특권과 반칙에 손을 들어주던 법원이 '법 앞에 평등'이라는 상식을 실현한 것이다. 자그마치 79년이 걸렸다. 초대회장 이병철은 '사카린 밀수 사건' 때 처벌되지 않았고 이건희 회장도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조성'과 '삼성 비자금사건' 때 구속을 면했다. 이번 이재용의 기소는 권력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도려내는 철퇴처럼 보인다. 그런데 왠지 시원치가 않다. 석연치도 않다. 탄핵정국의 시범케이스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안하무인으로 국가권력을 농단했던 자들이 손을 벌리고 겁박하는데 버틸 재간이 있었을까. 돈 걷어서 선거 치르고, 불리하면 뒤통수치는 정치판이 저주의 굿판 아니던가.

▶'시범케이스'는 학교, 군대, 직장, 기업, 정치판 등등에서 통용된다. 일제 강점기, 친일 앞잡이들은 서로의 뺨을 때리게 하는 야만적인 린치로 ‘공포 매국’을 저질렀다. ‘한 놈만 족치면 여럿이 벌벌 떤다’는 본때 전술을 편 것이다. 불운하게도 이때의 앞잡이들이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군사독재시절의 삼청교육대도 '깡패'가 아니라 '국민'을 잡기 위해 만든 폭력기관이었다. '니들 그딴 식으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봐라'는 식으로 폭력의 민낯을 보여준 것이다.

▶시범케이스가 무서운 것은, 무서움을 눈으로 직접 보기 때문이다. 한 번 찍히면 몸과 마음이 성하지 않다는 사실을 목도하면서 두려움은 커지게 돼있다. 북한 김정은이 이복형을 암살한 것도 본인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두려움의 대상을 제거한 것이다. 두려움을 공포심으로 치환한 행위다. '강한 미국'을 표방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범 케이스로 '북핵'과 '김정은'을 선택했다는 관측도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다. 정치꾼, 독재자, 재벌, 앞잡이, 꼰대들의 성정(性情)은 같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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