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남 암살 사건은 북한 정권의 치밀한 기획 아래 벌어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김정남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보면 잔학무도한 독살 수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김정남이 공격을 당한 것은 불과 2.33초이었다. 미리 치밀하게 기획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정남은 공격을 받은 후 30분만에 숨졌다. 과거 KGB가 독극물로 요인을 암살하는 수법과 닮았다. 암살범이 뿌린 독가스를 들이마시면 심장마비, 호흡곤란으로 숨지게 하는 첨단화학무기다. 마치 심장마비로 자연사한 것처럼 위장하는 악질적인 수법이다. 북한의 독극물·화학무기 공격능력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이 신형 중거리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 발사에 이어 김정남을 암살해 국제사회에 파장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로서는 전방위적인 대북 비핵화 압박과 더불어 북한인권 문제 제기라는 '투 트랙'으로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머잖아 김정남 암살 사건의 북한 소행을 뒷받침하는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도 북한의 소행을 부인하기 힘들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미 이 범행에 리정철을 비롯해 북한 사람 다수가 관여돼 있음을 밝혀냈다. 국제사회와 공조체제를 강화하여 오늘의 사태에 한치도 빈틈 없이 적절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때마침 오는 27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 사건을 정식으로 거론해야 한다. 북한 인권상황의 심각성과 더불어 김정은 정권의 책임을 적극 묻지 않을 수 없다. 유엔총회가 북한의 인권 개선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2005년 이래 줄곧 12년째다. 북한 인권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와 책임자처벌을 안전보장이사회에 권고하는 내용이 들어간 것 또한 3년 연속이다.

국제사회가 이토록 북한 인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국내 사정은 딴 세상이다. 북한인권법을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3월에서야 뒤늦게 제정했으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북한인권재단이 민주당의 비협조로 구성되지 않아 무력화되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에 대해 이토록 무관심한 야당의 태도가 이해하기 힘들다. 북한 인권에 대한 대권주자들의 명백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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