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범 대전 대덕구청장
[투데이포럼]

요즘 흥미롭게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KBS 한국방송에서 연초부터 시작한 ‘한국사기’라는 프로그램이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적절히 배합해 우리 민족의 뿌리와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되짚는 내용인데 역사 다시보기라는 학습 효과와 더불어 그동안 잠시 잊고 지냈던 ‘우리’라는 주제가 가슴에 깊게 와 닿아 꽤 몰입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우리 조상의 삶의 풍경과 민족의 아픔, 위기 극복의지와 성장 과정을 두루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 프로그램이 주목한 것은 ‘우리’였다. ‘나’와 ‘너’가 있지만 이를 하나로 묶는 우리라는 생각은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성장했고, 지금 우리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시켰다.

인간 개개인은 다른 여타 생물과 비교해 스스로 홀로 생존하기에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사회를 이루고 서로 부족함을 채우면서 지구상 그 어떤 생물보다 번성하는 존재가 됐다. 우리 민족도 수렵·채집이 주였던 구석기 시절부터 우리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한다. 함께 돌보고 함께 사냥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다.

본격적인 농경사회에 이르러 우리는 서로 힘을 모아야 생존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나와 너 뿐만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이 더욱 강해지게 된다.

다시 현 시대로 돌아와 보자.

서양 문물의 유입과 자유롭고 쉬워진 이동, 산업화와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로 인해 이제는 민족적 ‘우리’보다는 사회적 ‘우리’가 더 중요한 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급속한 사회 변화는 큰 부작용도 낳았다. 일단 나만 생존하고 봐야 한다는 이기주의 팽배의 소산으로 각박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예전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였다. 멀리 사는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는 말이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변화로 점차 1인 가구가 늘어나게 됐고, 이주도 잦아지며 이웃사촌의 개념은 점차 사라졌다. 비슷한 공간에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옆집에 사는 아이는 내 아이와 다름없고, 윗집 어르신은 내 부모와 같다’는 이웃사촌의 개념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이런 사회의 반영인지 얼마 전 어려운 사정의 모녀가 생활고에 못 견뎌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또 최근에는 일자리를 잃고 굶주림에 수돗물로 끼니를 연명하던 청년이 막걸리를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연이 전해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이유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나에게도 닥칠 수도 있고, 내 가족이 처할 상황일 수도 있다. 만약 내 가족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을 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입학시즌이 다가오고 새 출발이 설레는 시기가 다가왔다. 하지만 외롭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시작을 맞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내 아이뿐만 아니라 이웃의 아이도 내 아이같이 돌본다면 우리 아이들이 이웃들의 관심 속에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다.

주변 어르신을 비롯해 다른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우리 삶을 풍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선 우리를 되찾아 보자.

이를 위해 거창한 일을 실천해야 한다는 부담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 이웃과 어르신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동네 아이들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와 우리 동네 시설을 내 것처럼 아끼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나와 너, 그리고 단순한 주거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이웃’과 ‘우리 동네’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