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길 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대전시민대학장
[투데이포럼]

우리의 역사는 데모로 시작되고 데모로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데모를 보고 자랐고, 지금까지도 시위현장을 보고 있으니 참으로 그 역사가 끈질기고 생명력이 있다 할 것이다. 6·25가 휴전된 직후 바로 다음 해부터 경무대 어귀에서 군중 데모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700명 넘게 체포되고, 전국에 비상경계령이 선포되더니 60년대로 접어들면서 학생들의 데모는 격화되고 결국 자유당의 이승만 독재정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4·19혁명으로 탄생한 민주당의 제2공화국, 그 민주주의를 1년 만에 뒤엎은 것은 5·16 쿠데타였다. 조갑제 씨 책에 의하면 만주군관학교 출신 일본군 장교 다카끼 마사오(高木正雄)는 5·16 새벽 쿠데타군의 출동명령조차도 일본말로 했다 한다. 이렇게 탄생한 박정희 집권 시기는 3선 개헌과 유신체제로 종신집권을 획책하다 부하인 김재규에 의해 피살될 때까지 18년 간 끊임없는 데모의 연속이었다. 대일굴욕외교 반대(6·3사태), 한일협정비준 무효화 및 6·8부정선거 규탄, 3선 개헌반대, 4·27대통령선거 부정규탄, 유신체제 반대와 개헌청원 백만명 서명운동, 민주회복국민회의와 인권회복 기도회, 가두시위 등 이 땅의 모든 청년, 지식인과 노동자, 종교인들이 거리나 학교에서 심지어 성당과 교회, 산업현장에서 치열하게 데모를 했다. 그 때마다 독재자는 긴급조치 9호까지 발동하면서 민주세력을 짓밟아 탄압하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고 지하로 들어갔다.

3공이 끝나자 12·12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박정희의 후예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휴전선의 전투병력을 빼돌려 동족을 학살하고, 민주인사를 죽이려 했다. 그가 물러날 때까지 7년의 긴 세월동안 데모의 역사는 절정을 이룬 것 같았다. 그 역시 역사의 심판을 받아 백담사를 거쳐 감옥까지 갔다 왔다. 이렇게 해서 되찾은 우리의 민주주의. 그러나 이명박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서 현재 우리는 탄핵정국이라는 비상시국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몇십 년 동안 가진 것, 누린 것, 쌓은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날아가야 할 판이다. 1978년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최절정기에 다다른 시점, 긴급조치 시대에 나온 한 시인의 절규가 귓전에 생생하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온몸으로 가자/허공을 뚫고/온몸으로 가자/가서는 돌아오지 말자/박혀서/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돌아오지 말자/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고은, ‘화살’)

꺼지지 않는 우리 민주주의의 DNA는 데모다. 함께 모여 시위하고 저 자유와 정의를 향해 끊임없이 쏘아올리는 화살인 것이다. 맑은 눈으로 역사의 중심에 서서 온몸으로 수난을 겪어본 사람들은 필히 증언하리라.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은 데모나 시위가 없는 세상이다. 그저 모든 국민들이 평화롭게 말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그런 세월 속에 살다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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