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제역 백신 정책에 대한 불신감이 여간 큰 게 아니다. 구제역의 부작용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축산 농가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5년간 구제역 백신 접종으로 소·돼지에 부작용이 243곳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농가에서 백신 접종에 호감을 갖지 않는 구조다. 정부가 부작용 공포를 해소시키기는커녕 구제역 발생 책임을 축산 농가에 떠넘기기 하는 발상은 구제역 방역 정책의 본말이 뒤바뀐 처사나 다름없다.

대규모 축산단지인 홍성군의 경우 하루에 최소 2~3건의 유·사산 및 폐사 등의 구제역 백신 부작용 의심 신고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충남에선 지난해 12마리, 2015년 3마리에서 부작용이 발생한 바 있다. 전국적으로는 매년 50곳 내외의 농가에서 백신 부작용을 인정받아 정부 보상을 받았다. 검증 절차가 까다로워 보상을 받지 못한 농가까지 감안할 경우 실제 피해규모는 훨씬 더 큰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백신 부작용이 현실화되자 농가에서 정부 정책에 불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물백신’ 논란도 여전하다. 백신을 기피하는 농가에 대해 무조건 안이한 대처, 도덕적 해이라고 질타하기에는 부족한 구석이 있다. 2010년 구제역 파동 이후 소·돼지 등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취지를 살리려면 보다 더 면밀하게 농가와 소통하면서 백신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했어야 했다. 정부가 농가에게 접종을 일임한 후 접종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는 절차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실적위주의 정책에 매몰하고 만 것이다.

백신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그래서다. 구제역이 첫 발생한 충북 보은군 젖소농장의 항체 형성률은 19%였고, 전북 정읍 한우농장의 항체 형성률은 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초 정부가 소의 항체 형성률이 전국 평균 97.5%라고 추정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부실한 표본조사 문제가 불거져 방역 당국이 또 한번 망신을 당했다.

이번 구제역은 O형과 A형이 동시에 발생해 혼란을 더욱 키웠다.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예방 백신이 부족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적기에 방어할만한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백신 접종은 물론 완벽한 차단 방역을 위한 방역당국-농가의 유기적인 시스템이 한 치도 겉돌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 신뢰 여건 마련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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