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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을 하며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7년 02월 17일 금요일 제20면     승인시간 : 2017년 02월 16일 19시 40분
이승애 수필가
[에세이]

가지런히 진열된 형형색색 털실이 곱기도 하다. 어떤 이의 손에 붙들려가 사랑하는 이의 옷으로, 목도리로 거듭나는 모습을 상상하니 즐겁다. 문득 어머니의 굽은 등이 떠올랐다. 거동이 불편해 집안에서만 생활하시는 어머니의 등은 바깥세상과 멀어져 늘 시리게 느껴진다. 폭신한 조끼 하나 떠 드리고 싶어 겁 없이 털실 뭉치를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잡은 실과 바늘은 마음과 달리 자꾸 어긋났다. 두어 시간 꼼짝 않고 뜬 조끼는 군데군데 코가 빠져 구멍이 나 있었고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늘어지고 오그라들고 영 볼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풀어버렸다. 며칠 동안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 바람에 복슬복슬하고 예뻤던 실은 윤기를 잃어 후줄근해졌고 며칠 애쓴 몸은 서서히 지쳐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잔뜩 웅크린 등이 어둠에 젖어 더욱 시리게 느껴졌다. 포기하려던 마음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실과 바늘을 잡아들었다. 여전히 실수를 거듭했지만 내 안의 게으름을 꾸짖으며 어머니의 조끼는 완성됐다. 털실로 옷을 뜨다 보면 실이 엉키기도 하고 코를 빠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 실을 끊어버리거나 빠진 코를 무시하고 뜨개질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빠졌던 코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구 풀려버리고, 잘라버린 엉킨 실은 매듭이 많이 생겨 맵시가 없게 된다. 결국 손마디가 저리도록 노력한 보람이 물거품이 돼버린다.

우리는 뻔히 끝이 보이는 일을 두고 무소의 뿔처럼 치닫는 인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우리의 정치판은 잘못 짜인 옷 꼴로 불안 불안하다. 불의와 탐욕에 눈먼 자들이 벌인 일들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국민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조류인플루엔자에 이어 구제역이 이 땅에 발붙인 생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실과 바늘을 잡은 사람들은 엉키고 잘못된 부분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안하고 손 쉬운 공약만 내세우고 있다.

눈 속에서도 매화가 피고, 순백의 목련도 그 화사함을 터뜨리는데, 봄을 찾아 모시고 와야 할 사람들은 이불 속에서 아등바등하며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희망과 꿈은 잘려나가는 나뭇가지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내친김에 어머니 스웨터까지 떴다. 조끼를 뜨며 반복한 실패가 스승이 됐다. 이제 어머니의 굽은 등뿐 아니라 움츠러든 어깨와 팔까지 덮어줄 수 있는 옷이 하나 더 생겼으니 조금 더 따뜻하게 지내시리라.

실과 바늘은 따뜻한 옷뿐아니라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을 전하는 따뜻한 손길이 됐다. 만약에 내가 실과 바늘을 집어 들지 않았다면 옷을 뜨는 방법도 엉킨 실타래를 푸는 방법도 몰랐으리라. 바늘과 실로 한 줄 한 줄 옷을 떠나가면서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고, 실수를 인정하고 굴복하는 법을 배웠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 편안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 어머니 등도 따뜻해지고 내 마음도 푸근해진 것이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은 세파의 찬바람도 덥혀주는 법이다.

어머니는 요즘 폭신한 조끼와 스웨터로 등 시린 줄 모르고 지내신다. 늘 움츠러들었던 어깨도 쭉 펴져 어깨 결림도 덜하다 하신다. 괜히 내 등과 어깨도 후끈해진다.

우리는 이 스웨터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민주주의 옷을 입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 대선주자들은 뚝뚝 떨어지는 희망과 꿈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모두가 등을 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외세의 압박쯤 거뜬히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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