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 대전시의회 의장
[시선]

작년 가을쯤엔가 재미난 신문기사를 읽었다. 미국 미주리주에서 102세 할머니가 경찰차에 압송됐다. 이유인즉 경찰차를 타보는 것이 평생소원이던 할머니가 '버킷리스트'에 경찰에 체포돼보고 싶다고 적었고,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지역 경찰관들이 깜짝 상황극을 벌인 것이다. 한쪽 손목에 수갑을 차고 다른 손에 지팡이를 짚은 채, 흐뭇한 미소로 호송되는 할머니 사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도 한동안 버킷리스트(Bucket List) 가 유행했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어둔 목록을 뜻하는 이 말은 원래는 중세 유럽에서 교수형이나 자살을 할 때, 밧줄에 목을 두룬 채 밟고 올라선 양동이를 걷어찬다는 뜻의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버킷리스트는 '죽기 위해' 작성하는 리스트는 아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거나 예측할 수 없는 갑작스런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떨까? 남아있는 가족, 친구, 동료들. 그들에게 사랑하는 이의 부재(不在)는 커다란 충격일 것이며, 극도의 스트레스와 격한 슬픔을 남길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과 이별하고 고인(故人)으로 사라져 버린다면 분명 스스로도 깊은 회한과 억울함이 남을 것 같다.

필자 역시 그런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 본 계기가 있었다. 작년 여름, 과로로 쓰러져 119구급대원의 심폐소생술로 회생한 경험이 있다. 한번 그런 경험이 있고난 후 삶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아직은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현장을 찾고, 가능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그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이승에서의 당신의 시간이 일주일 남았습니다.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가진 돈을 몽땅 털어 초호화 고급빌라에서 일주일간 실컷 놀고먹으며 보내겠다는 사람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즉흥적으로 그렇게 답했던 사람마저도 다시 생각해보면 이내 다른 대답을 내놓을 공산이 크다. 왜냐면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망 속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시골의 노모(老母)에게 더 자주 안부전화를 드릴 것이고, 일에 쫓기느라 정작 소홀했던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어릴 때는 참으로 살가웠던 아들·딸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며, 추억의 장소로 여행도 떠나고 싶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1분 1초가 아까울 것이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적어가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 사람이라면,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게 될 것이며, 삶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버킷리스트는 그래서 필요하다. 반목하고 배척했던 사람들을 용서와 화해의 길로 인도하고, 자신의 생활태도를 교정하며, 보다 유연하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내가 허투루 보내고 있는 이 시간, 누군가는 병마와 싸우며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 주어진 삶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은 생명이 있는 자들이 지켜야할 엄중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움켜쥔 게 많아서 그런지 40대부터 유언장을 썼다던 최순실이 버킷리스트를 써볼 기회를 가져봤더라면 지금과 다른 상황이 그려질 수도 있었을까? 죽기위해서가 아니라 더 멋지게 살기위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후회되지 않는 시간들을 선물하기 위해 이즈음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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