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충남도교육감
[투데이포럼]

민주주의의 역사는 선거권 확대의 과정이었다. '뇌가 작은 흑인은 정치적 사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로 흑인의 참정권과 인권을 제했던 적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사회에는 '18세 청소년에게 참정권은 입시 준비와 학업이라는 학생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권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정치 후진국, 민주주의 후진국이다.

최근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확대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해 8월 중앙선관위도 선거권 연령 18세 확대를 제안했다. 중앙선관위는 "정치 사회의 민주화와 교육수준의 향상, 인터넷 등 다양한 대중매체를 이용한 정보교류가 활발해진 사회 환경으로 인해, 18세에 도달한 국민은 이미 독자적 신념과 정치적 판단에 기초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을 갖추고 있다"라고 했다.

선거 연령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다. 전세계 232개국 중 215개국이 16~18세 이상을 선거권 부여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경제협력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선거권 부여 기준이 19세 이상인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일본도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2015년 선거 연령을 18세로 확대했다.

국민의 기본권은 확대가 답이라는 생각으로 지난달 19일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에 '선거 연령을 18세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총회 안건으로 제출했다. 학생과 학교현장, 사회 성숙 정도를 고려한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 만장일치로 성명서를 채택해 교육계의 통일된 입장을 발표했다. 선거권 연령은 공동체의 시민으로 인정받는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정치적 계산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으로 볼 때 18세가 가장 보편적인 선거권 연령으로 보인다. 내가 만난 청소년들은 스스로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합리적인 시민이었다.

대한민국의 18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민법, 병역법, 공무원임용시험령에 의해 결혼도 가능하고, 군대도 갈 수 있으며,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보육원에 있던 청소년은 퇴소해 의식주는 물론 정치, 경제, 교육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자립해야하는 나이다. 그런데 선거권만 없다. 공무원이 돼 공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선거가 갖는 법적 정치적 의미와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 능력도 갖추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선거권을 확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18세 청소년들이 원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국 YMCA 청소년 대표자회의가 전국의 청소년 1264명을 대상으로 참정권 의식 조사를 실시했는데 75%가 18세 선거권 부여에 찬성했다고 한다. 촛불광장을 지나면서 참정권을 요구하는 낭랑 18세의 목소리는 더 굵어졌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대별 유권자 층의 균형과 여론의 다양성 확보는 세대갈등 극복과 국민 대통합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교육의 목적은 민주시민 양성이다. 민주국가 발전의 동력은 민주시민이다. 민주시민은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참여를 통해 성숙한다. 18세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일은 공동체에 대한 정체성과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일이며,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이다. 선거는 참여와 민주적 의사 결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민주주의의 산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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