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겨울이 깊어갈수록 어둠의 총량도 커진다. 어둠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외로움으로 감정을 증폭시킨다. 필연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과 외로움의 넓이가 확장된다. 주변의 사람들이 서서히 곁에서 떠나가기 때문이다. 아들을 군에 보낸 후, 여럿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남들은 유난스럽다고 지청구를 주지만, 어쩔 수가 없다. 심지어 아침 점호시간(동계기준 6시30분)에 맞춰 기상하고 구보도 한다. 떨어져 있지만 동류의식,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살을 에는 날씨에 천변으로 나가 뜀박질을 하는 건 곤욕이다. 몸은 물론 세포와 정신까지 얼어붙는다. 하지만 아들을 생각하며 뛴다. 아들의 심장박동을 공유한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각자 뛰는 일은 아들이 처한 모든 상황들을 함께하고 싶다는 뜻이다. 물론 부질없는 짓이란 것도 안다. 물론 '있을 때 잘하지, 왜 없을 때 유별나게 구느냐'는 질문에 답할 자신은 없다. 진즉에 그 절실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건 불찰이다. 그러나 아들의 두려움과 아버지의 외로움을 적당히 결합시켜 '이 당혹스러운 일상'을 희석시키고 싶을 뿐이다.


▶입대하기 전, 우린 영화를 함께 보고 노래방, 당구장에도 갔다. 술친구도 했다. 많은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냥 웃고 또 웃었다. 그 웃음은 서로가 '울고 있음'을 애써 숨기려는 반어법 같은 거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 명절을 군에서 보내게 된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듯했지만 분명 울고 있었다. 허락된 시간은 딱 1분. 뚜두두둑. 안부도 채 묻지 못한 채 끝났다. 시간은 멈춰 섰고 동시에 마음 또한 분절됐다.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아들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왜 우린 20년이 흐르고 나서야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 것일까. 잃어버렸던 사랑의 나침반을 다시 찾은 듯 했다.

▶(팔불출이라 하겠지만) 아들은 복학 후 쓸 장학금도 확정해놓고 갔다. 밤을 새워가며 절실하게 공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집안에 도움을 주기 위해 2년 후까지 예비해놓은 것이다. 그 갸륵한 마음은 형편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숭고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만족보다는 유예된 보상이다. 날씨가 유난히 춥다. 마음까지 얼리니 추위가 아니라 심술이다. 굳이 겨울인 척 안 해도 겨울인줄 아는데 왜 이리 고약할까. 제발 춥지 좀 마라. 제발, 아들의 발을 얼리지 마라. 제발, 아들의 귀를 얼리지 마라. 오늘도 새벽녘부터 천변을 뛴다. 아들의 체온이 느껴진다. 아들의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우린 서로 다른 장소 같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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