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관 청주의료원장
[목요세평]

선물은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설 명절에 오가는 선물도 그런 마음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선물이 오가는 때가 되니 선물에 얽힌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정년에 되어 대학을 퇴임할 때 교수생활을 정리하면서 '000 교수님,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제가 명예롭게 퇴임합니다'라는 제목과 '참 스승'이라는 부제로 '병원이나 학교에서 보직을 맡을 때마다 기뻐해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맛있는 음식까지 사 주셨던 선생님, 연말이면 찾아뵙고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가르침을 받고 하던 일이 저의 삶에서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은사님께 쓴 글이 있다.

그랬다. 청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해마다 마지막 날이면 나는 존경과 고마운 마음이 담긴 선물을 가지고 교수님댁을 방문해 인사드리고 밤늦게까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학생 때부터 전공의 시절, 그리고 군복무 후 대학에서 일하기까지 의사로 만들어 주시고 교수로 활동하게 하시고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정말 감사드리는 마음을 그 선물에 담았었다. 그 선생님께서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의료원을 찾아오셔서 부족한 제자를 대견해 하시며 격려해 주셨는데 그 격려의 말씀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크고 값진 선물이었다.

대학을 퇴임하던 날 내가 맡았던 환자 보호자 두 분을 퇴임식에 초청했다. 그 중 한 분은 새로 지어 이사한 그 대학병원에서 내가 맡았던 환자 중 첫 번째 사망한 환자의 할머니였다. 입원치료 중 그리고 마지막 처치 과정은 의사라면 누구나가 하는 의료 행위였을 텐데 그 모든 것이 고맙다며 20년 가까이 명절에는 물론 가을 추수 때면 언제나 무거운 선물을 보내 주셨던 분이다.

얼마 전 그 할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혹시 선생님께 누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소위 김영란 법이 발효되고 나서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신 것이다. 별로 한 일도 없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과분한 선물을 받아오던 터라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제 절대로 안 돼요. 그 마음만 정말 감사히 받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교수님은 간이 콩알만 해서…' 하시면서 매우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으셨는데 그 아쉬워하시는 마음이 그 어떤 선물보다 무겁고 값지게 느껴졌다.

의료원에 근무하며 명절 때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 입원하고 계신 환자분들께 드렸다. 이번 설에도 양말 한 켤레씩을 준비해 간호부에서 예쁘게 포장하고 '설 명절을 맞아 병도 나으시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한 해 되기를 빕니다'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였다. 병실에 들어서며 수간호사께서 '원장께서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드리려고 오셨어요'하면 너무 보잘 것 없는 선물이기 때문에 큰 소리로 '빗싼 선물을 가지고 왔어요'하며 일부러 '비싼'을 된소리로 발음하며 환자분들께 다가갔다. 선물을 드리며 '좋아지고 계신가요? 빨리 회복하시기를 빕니다'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니 모든 환자분들은 불편하신 몸을 일으키려 애쓰시고,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으시며 고마움을 표하신다.

'뭐 이렇게 선물까지 주시나요' '저희가 드려야 하는데 이건 거꾸로네요' '여기서 원장님을 뵙네요, 영광입니다' 이런 인사말을 침대위에서나 내려오셔서 하신다. 그렇게도 못 하시며 아파서 힘들어 하시는 환자, 인공호흡기를 꼽고 말씀은 못 하시면서도 곱아진 손을 내밀며 고마움을 표현하시는 환자, 전혀 거동을 못 하시며 침대에 똑바로 누워 촉촉이 적셔오는 눈망울과 파르르 입술을 떠는 환자…. 선물을 드리면서 이 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선의 진료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 확인했다. 선물을 나누어 드리고 병실은 나서는데 등 뒤에서 '마침 양말에 구멍이 났었는데 새 양말이 생겼네요'하며 웃으며 좋아하시는 소리에 나도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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