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수요광장]

요즈음 날씨처럼 모든 것이 움츠러들었다. 달걀 한판도 들었다 놨다 하는 주부에게는 암울한 정치 상황을 불평하는 호사도 버겁다. 또 다른 1년을 마주한 재수생의 낡은 노트부터 잔뜩 주눅 든 취준생의 긁힌 안경알, 과장님의 불호령이 아뜩한 신입의 결재판, 구조 조정된 가장의 처진 어깨에 얹혀있는 삶의 무게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시리게 짓누른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집안도 어지러운데 이웃에서 자꾸만 쑤셔댄다. 애당초 남이 어려울 때 기다려 줄 이웃이라 기대한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중국은 사드 한한령(限韓令)으로 일본은 소녀상 철거 압박으로 트럼프의 미국은 고립주의로 선장 잃은 대한민국호를 업신여기고 압박한다. 정부는 대항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민초의 시름은 더해 간다.

IMF 사태 때의 모라토리엄 위기도 넘겼는데 그때보다 더 어려울 거라는 언론들의 전망에 시린 어깨가 더욱 움츠러든다. 위기는 기회라 하지 않았는가? IMF 때처럼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줄 순 없을까? 언제는 우리 민족이 국왕의 리더십으로 국난을 극복해 왔던가? 짓밟히고 찢기고 쓰러지더라도 서로 부둥켜안고 다시 일어나 항거하며 이 나라를 지켜온 민초의 끈질긴 삶이 그들의 뜨거운 피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건 어찌 된 까닭인가. 아기 돌 반지를 선뜻 내놓을 때의 그 절박함, “2002년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쳐가며 모두가 염원했던 그 간절함, 하나 됐던 그 마음이 흩어져 버린 지금 엄습해 오는 위기감에 등골이 서늘하다.

선거철이 되었나 보다. 대선 주자로 나선 이마다 자신이 되면 이 나라의 모든 문제가 바로 해결될 것처럼 공약한다. 그런데, 우리가 처한 현실은 이런 정치 일정을 그냥 견뎌낼 만큼 녹록지 않다. ‘춘래불사춘’이라고 지금의 좌절감이 이어진다면 선거가 끝나고 봄이 와도 그 봄은 봄 같지 않을 것이다.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인 것이 뉴욕에 허리케인을 불러올 수 있다는 나비효과 이론이 있다. 자연 같은 복잡계에서는 초깃값을 아주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수학의 카오스 이론을 쉽게 설명한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로렌츠라는 기상학자가 3계 미분방정식을 풀던 중 실수로 초깃값의 소수점 셋째짜리 미만을 생략하였는데, 나중에 다시 검토하면서 이 초기 조건을 아주 미세하게 변화시켰을 때 기상 현상이 극심하게 변한다는 것을 발견한 데서 비롯되었다.

탄핵 결과에 따른 대선 일정이, 빅텐트가 펼쳐질지 말지, 미국의 금리 변동에 따른 외환 움직임이, 아이폰과 갤럭시의 희비가, AI의 확산과 달걀 수입이 지속될지가, 세뱃돈을 받은 돈으로 붕어빵을 살지 말지 망설이는 꼬마의 결정이 모두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초깃값은 새 정부 이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값이라는 점이다. 오늘 내가, 우리가, 우리 가족이, 우리 직장이 변한다면 좌절감을 떨쳐버린다면, 인수위 시기 새 정부에 희망을 거는 것처럼 파이팅을 보여줄 수 있다면 새 정부를 기다리기 전에 벌써 대한민국은 골목 앞 구멍가게까지 생기가 넘쳐나고 중국과 일본, 미국이 업신여길 수 없는 그런 ‘아! 대한민국!’ 이 되어 있을 것이다.

봄을 앞당기자. IMF 때 금 모으던 절실함을 담아 좌초 위기의 대한민국호를 구해내자. 그냥 지나치지 말고 붕어빵 한 봉지를 사는 것이, 집 앞 골목길에 화분 하나를 놓아두는 것이, 연말에나 뽑으려 했던 직원 한 명을 지금 뽑는 것이 나비가 되어 봄을 재촉하고 어느새 봄을 내 곁에 둘 수 있을 것이다. 민초의 작은 날갯짓이 대한민국의 봄을 앞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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