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용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아침마당]

안심 가로등, 안심 수돗물, 안심 비상벨 등등 기업에서 고객들의 불안한 심리를 공략하기 위해 태동된 ‘안심 마케팅’이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성균관대 위험커뮤니케이션연구단의 2015년 한국인의 안심수준 진단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안심 수준은 100점 기준에 40.8점에 불과하다.

안전은 개인, 기업, 정부가 물리적이며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나서서 ‘안전’하다고 말해도 국민은 ‘안심’하지 못한다. 국민은 스스로 판단하기 힘들고 어려운 안전보다는 본능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안심에 기대고 있다. ‘안전한가’의 여부는 전문가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지만, ‘안심한가?’의 여부는 개인이 주관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전문가는 안전, 국민은 안심’이라는 도식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국민은 점점 준전문가 수준의 똑똑한 소비자가 되고 있다. 내가 먹는 음식, 내 아이가 탈 유모차,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안전을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기술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공공기관도 국민을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위험에 관한 결정을 오직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이 과학적 평가인 ‘안전’ 판단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NGO, 시민단체 등과 논의의 장을 개방해 사회적 평가인 ‘안심’ 판단을 반영하는 ‘리스크 거버넌스(risk governance)’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설립된 최초의 유엔본부 산하기구인 ‘유엔 거버넌스센터’의 김호영 초대원장은 “거버넌스는 정부와 민간기업, 시민단체 등이 협력해 사회 전체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사회적 의사결정에 있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협치의 방식인 것이다.

원자력안전에 관한 한 전문가의 안전과 국민의 안심과의 차이는 과거에 비해 좁혀지기는 했으나 이해당사자의 협치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 안전 분야의 경우 원자력안전협의회, 민간환경감시기구 등을 원전 지역마다 운영하고 있고, 지진 영향이나 노후 원전의 안전성 평가 등에도 지역주민이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국회가 추천해 위촉한 위원들이 규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안전과 안심의 차이를 줄이는 순기능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객관적 위험 그 자체를 줄이는 과학기술적 ‘안전’에 대한 노력도 가속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19일 지난해 발생한 경주 지진 대책 등 원자력 안전 연구에 지난해 보다 6.9% 늘어난 총 308억 6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하는 ‘2017년 원자력 안전 연구개발 사업계획(안)’을 심의 의결하기도 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을 비롯한 원자력 관련 모든 조직들이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한 안전문화를 배양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위험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와 합의를 통해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위험에 대한 의사결정에도 과학기술적 관점은 물론 사회적 가치와 우려들이 함께 고려된다면 리스크 거버넌스는 국민 참여 촉진과 사회 갈등 해소의 새로운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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