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오 청주시 서원구청장
[투데이포럼]

시작과 탄생, 희망을 상징하는 붉은 닭의 해,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새해가 밝았음에도 우리사회는 그리 밝아 보이지도 희망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시작과 탄생의 기운은 커녕 불안과 혼돈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서민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실감한다. 더 팍팍해지고 고단해 지기만 하는 삶에 지쳐가고 있다.

이즈음 필자의 머릿속에 ‘철가방’ 세 글자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철가방'은 음식점에서 배달할 때 요리를 담아 나르는 철로 된 가방이다. 혹은, 음식을 배달하는 분들이나 직업을 폄하해 부르는 비속어(卑俗語)이기도 하다. 철가방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은근한 친근감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국민음식이 된 짜장면이나 짬뽕에 얽힌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철가방의 사명은 오로지 빠르고 안전하게 음식을 배달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거리를 누비는 자동차들과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소비자들로부터 주문된 음식이 빠르게 배달되지 않으면 면발이 불게 되고 식어서 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철가방은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각종 공사 현장에서 못자리를 하는 들판으로, 야근을 하는 직장인들의 책상으로 배달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들은 또 달리고 달린다.

철가방 속에 담긴 한 끼의 식사는 허기를 달래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삶의 고단함과 추위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온기를 주고, 다시 일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 철가방을 든 배달원들의 수고는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그 철가방의 철저한 직업정신이 없었다면 우리의 소중한 추억과 소박한 행복도 함께 사라졌을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따뜻하고 안전하게 음식을 배달하고자 하는 그 직업정신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배려보다는 독선과 아집이 우선하고, 장점보다는 단점을 들춰내고, 남의 불행이 자기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판치는 우리사회가 그 초심을 본받아야 한다. 정치인은 정당의 존폐나 유·불리보다 국익과 국가의 미래를, 경제인은 회사의 이익보다 경제발전과 사원들의 복지를, 공직자들은 자신의 안전보다 국민의 행복을 더 걱정하고 우선해야 한다.

국민들은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 세계정세나 국내환경 모두 녹록지 않다. 모두들 위기라고 한다. IMF 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불안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내 탓이요'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이제라도 우리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본래의 자리,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세상에 정의를 바로 세우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도깨비 수호신이 필요하다. 철가방에 담긴 작지만 큰 마음이 그것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는 세상의 모든 철가방들에게 한없는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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