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눈물은 불가피할 때 흐른다. 이성으로 이겨내지 못할 때 불가항력적으로 흐른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고 주르륵 내린다. 절박한 눈물은 짜지 않다. 맑다. 아들이 머리를 박박 밀고 육군훈련소 연병장에 섰을 때 그 맑은 눈물 맛을 알았다. 미각으로 느끼는 맛이 아니라 촉각으로 느끼는 눈물 맛, 단전에서부터 차오르는 묘한 비애였다. 눈물을 억누르고 있던 홍채의 괄약근이 풀리자, 몸 전체 50개의 조임근에서 어둠이 쏟아졌다. 눈물은 들켰을 때 모호해진다. 타인이 보면 청승맞고, 비밀스러움이 탄로 나면 슬픔이 희석된다. 하지만, 멀리서 눈물을 닦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 가슴은 이내 무너졌다. 혹한의 날씨, 아들의 눈물에서 체온을 읽었다. 우린 둘 다 '울음'으로써 서로의 안녕을 맹세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녕 아들, 안녕 아버지….'

▶누가 이 별리의 아픔을 강압한 것인가. 그 미증유의 가해자는 분단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공범, 공모자는 나약한 국가에게 있다. 대한민국의 보편타당한 지론은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글쎄올시다. 군대를 다녀와서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철들 나이가 됐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된 거다. 제대하고도 사람 구실 못하는 망나니들이 수두룩하다. 일곱 살만 되면 눈치가 멀쩡해진다 하지 않는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모두 배운다. 어떻게 살고, 뭘 하고, 어떤 사람이 돼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군대 좋아졌다는 소리도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아무리 좋아졌어도 군대는 군대다. 다시 군에 끌려가는 꿈은 개꿈이 아니라 악몽이다. 군대는 추억일 수 있지만 군 생활은 잊고 싶은 기억일 뿐이다.

▶국정농단에 지쳐있는 대한민국,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고, 책임지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이 불편함은 분노다. 나라를 말아먹고는 애국심 운운하는 건 가엾은 청춘들을 내모는 일이다. 우린 믿어왔던 것들이 의심스러워질 때 말을 잃는다. 사랑했던 것들이 미워지기 시작할 때 입을 닫는다. 머물었던 것들이 떠나려할 때 눈을 감아버린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려야하나. 애국심은 나라가 바로 설 때 저절로 생긴다. 가진 자, 누리는 자들이 차디 찬 연병장에 흐르는 '어둠의 맛'을 알까.

▶아들이 가야하는 그 길은 아버지가 갔던 길이다. 아들이 겪는 홍역은 아버지가 겪었던 아픔이다. 아들이 남기고 간 옷, 신발장의 운동화, 손때 묻은 노트, 썰렁하게 남은 숟가락 세트를 보며 그리움에 사무친다. 자면서도 생각나고, 숨 쉬면서도 생각난다. 아들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나서야 둥지로 돌아올 것이다. '아들아, 고장 난 조국이어서 미안하다만, 무사히 다녀오너라.' 그날 밤 꿈속에서도 눈물이 났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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