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속 사연]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도탄에 빠지다'. 도탄은 진흙 도(塗)와 숯 탄(炭)으로 이뤄진 단어다. 그러니까 '도탄에 빠지다'는 '진흙 수렁과 숯불 구덩이에 무엇이 빠지다'라는 본뜻이다. '생활이 몹시 쪼들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상태'가 의역이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무척이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탄에 빠진 도박중독자들의 치유에 대해서는 지극히 인색했다'. 이 말은 어디서 유래됐을까.

중국 하(河)나라로 올라가야 한다. 하 걸(桀) 왕은 정벌한 나라에서 조공으로 미색이 뛰어난 말희를 받았다. 미색에 넋을 잃은 걸왕은 말희 요구대로 옥으로 별궁을 짓은 뒤 연못을 파 그곳에 술을 담아놓고, 주변에 안주용 고기를 나무에 걸어 놓았다. 그곳에서 3000명의 남녀가 벌거벗고 밤낮없이 음주가무토록 했다. 말희와 그 광경을 별궁에서 즐겼다. 혹세와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방탕생활로 나라가 온전할 리 없었다. 급기야 상족(商族)이 나섰다. 말희는 남방으로 도망가다 죽었고, 하나라는 걸왕의 경국지색에 망했다.

상나라 건국자는 탕(湯)이다. 탕은 걸왕을 토벌하면서 당시 상황을 빗대 '도탄(塗炭)'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하나라가 덕에 어두워 백성이 도탄에 빠지거늘(民墜塗炭) 하늘이 탕왕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고 나라를 올바르게 하시어…" <書經:商書篇>

도탄에 빠진 형국이 요즘 우리나라가 아닐까. 술 취해 온갖 추태를 연출토록 하고 그것을 즐긴 걸왕과 말희의 관음증 망령이 한국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이른바 실세들이 나라를 마시고 백성을 씹었다. 국운을 진흙 수렁에 빠트리고 시뻘건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숯불 구덩이에 쑤셔 넣은 게다. 나라와 백성은 헤맨다. 가히 도탄지고(之苦)다.

주지육림의 씨앗이 발아한 청와대에는 고려시대 남쪽 서울로서의 별궁이 있었고 현재는 연못이 있다. 과거 수렁에 빠진 내 딸을 건진 사람은 경찰이었다. 이젠 수렁에 빠진 국운을 건지기 위해 검사, 그것도 특별검사가 나섰다. 모두 불신 덩어리지만 믿어보자.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