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투데이포럼]

자신과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에게 호기심을 갖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취미와 흥미가 비슷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더 즐거워한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공감, 서로 같은 곳에서 살아온 향수의 공유, 동갑끼리만 느낄 수 있는 동질감.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를 바탕으로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또 상대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얼마 전 WTA(World Technopolis Association·세계과학도시연합)에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손님들이 축사를 하던 중 필자의 관심을 끈 사람이 있었다. 유려하고 위트 넘치는 말 솜씨로 축사를 한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시 세르게이 로컷 시장님이 바로 그 분이었다.

그의 유머러스한 축사가 통역의 한계로 청중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필자는 그분에게 맞는 청중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바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260명의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의 학생들이었다. 필자는 시장님에게 명함을 건네고 초대의사를 밝혔고 시장님도 흔쾌히 필자의 초대에 응했다. 로컷 시장님은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청중들에게 자신의 연설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학생들 모두가 집중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의 차세대 리더가 미래의 리더들에게 전하는 말들은 낯선 외국에서 더 가슴에 남았을 것이고 같은 언어를 쓰는 동질감은 그 순간을 더 훈훈하고 감동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의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있다. 비빔밥은 외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음식 중의 하나이고 필자도 즐겨 먹는 음식이다. 설 명절을 지내고 남은 음식을 큰 그릇에 넣고 섞어서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먹는 것도 비빔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밥을 기본으로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서 집집마다 맛이 다를 것이다. 미국도 비빔밥처럼 조화로운 음식이 있는데 바로 '칠리'이다. ‘칠리 콘 카르네(chili con carne)’는 다진 쇠고기에 강낭콩, 칠리파우더를 넣고 끓인 매운 스튜이다. 스포츠 경기 응원과 같이 친지와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필자는 다진 쇠고기, 토마토소스, 검정콩, 양배추, 치즈, 식초, 비밀 향신료 등을 넣고 만드는데 지역이나 가정마다 넣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고 어떤 재료를 넣어야 하는지 종종 논쟁이 일어나기도 할 정도이다. 크래커 위에 칠리를 얹어 먹거나 부셔서 칠리와 섞어먹기도 하는데 필자의 아내는 크래커를 밥이나 면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필자와 아내는 미국에 있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가족이 그리워진 필자 부부는 칠리를 만들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만들었던 양 만큼이나 만드는 바람에 5일 동안의 저녁식사는 칠리로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전혀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비빔밥을 보면 함께 숟가락 부딪히며 먹던 가족이나 친지를 떠올리는 것처럼 칠리는 그리운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다. 필자와 아내는 그리움이 차오르는 날에는 반드시 칠리를 끓인다. 많은 양을 오랜 시간 약한 불에서 끊여야 하고 보글보글 끓어올라 넘칠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가장 큰 냄비를 꺼내 요리를 한다. 마치 우리의 그리움이 보글보글 끓는 것 같다.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것, 보고 싶을 때 실컷 볼 수 있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행운이다. 모든 분들께 올해도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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