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아침마당]

21세기에는 핵이나 양극화, 지구온난화처럼 국가나 민족 단위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 공공재라 할 수 있는 기후처럼 다들 남들이 잘 해줘서 무임승차로 득보기를 원하지, 솔선수범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지속가능성 위기를 해결하려면 주권국가를 넘어선 인식의 변화와 인류공통의 이야기, 즉 현대판 신화가 필요하다. 옛사람들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다른 생명을 죽여 영양을 취하는 것을 크게 불편하고 두려워했다. 하나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삶의 전제이다. 대표적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과 삶의 현실을 화해시키는 것이 신화의 기본구조라 했다. 신화는 삶의 긍정을 이끌 뿐 아니라 우주론이며 사회적 통합이자 인간잠재력의 계발인 셈이다. 과연 오늘날 인류공통의 이야기는 무엇이며 누가 이 새로운 인식을 주도하고 있을까.

첫째, 환경운동이다. 환경운동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산업화의 무한질주를 제한하는 규제 위주에서 새로운 차원의 인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소중하고 생명은 신성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계속해서 생명의 그물을 찢어놓는다면 그 덫은 곧 우리의 존재자체에 구멍을 뚫어놓는 짓이 된다는 생태주의 인식이다.

둘째, 과학 특히 현대물리학은 우주의 기본 속성이 '생명과 의식'일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 기존 뉴턴의 기계적 우주론의 시각에서 소비주의와 지구착취가 직접적이고 당연한 결과라면 우주가 살아있다고 보는 인식의 패러다임에서는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와 우리 자신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주가 찰라마다 하나의 교향곡으로 재생되고 완전한 상호의존 체계라는 깨달음은 우주 만물과의 연계의식은 물론 세상에 대한 우리의 연민을 일깨우며 살아있는 우주라는 맥락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우게 한다. 윤리적으로 만물은 하나하나 고유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우리 행동의 결과도 살아있는 우주에 공명해 윤리적 되울림으로 되돌아옴을 당연이 여긴다.

셋째, 현대의 비건(완전채식)운동이다. 삶의 전제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의식조차 없이 공장식 사육, 단일 경작, 유전자조작 등 생명이 조작되고 상품화되는 것이 일상인 시대에서 비건은 위의 새로운 인식들이 음식을 선택하는 인식의 질과 무관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생명체의 존속은 또 다른 생명체의 생명에 기대지만 탐욕이 아닌 오직 '필요'한 만큼 최소한의 폭력을 행사하려는 삶의 방식이자 윤리적 배려이다. 우리 자신과 문화에 내재한 폭력과 미망으로부터의 영적 각성 즉, 존재를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음식과 영성, 상호의존성과의 깊은 통찰은 고대 아힘사(비폭력)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에머슨과 소로우 등 미국 초월주의 진보적 지식인그룹에 의해 시작됐다. 이들은 오늘날 생태주의와 시민운동의 선구자들이다. 사실 전통적으로 옛사람들은 이를 이미 실천해왔다. 콩을 심을 때 하늘의 새와 땅의 벌레, 사람이 한 알씩 먹도록 배려한 것이나 오합혜와 까치밥, 고수레 문화를 봐라. 상대를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무생물까지 자연스레 확대됨을 볼 수 있다. 현대판 신화는 이렇듯 생명체에 대한 연민에 기초한 긍정적 혁명의 필요성을 노래한다.

우리는 생명 속에 깃든 영성과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존재이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환경과 문화, 정치경제 등의 총체적 위기도 깊게 바라보면 바로 영성의 문제이다. 영성은 상호의존성의 자각이다. 비건은 모든 생명을 향한 자비심과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마음살피기에 기초한다. 이름만 비건일 뿐 사실상 상호의존성 자각의 한 표현이며 현대판 신화의 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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