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세광 ETRI 스마트UI·UX디바이스연구실 연구원
[젊은과학 포럼]

지난해 노벨 화학상은 ‘분자기계’를 발명한 세 명의 외국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GDP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세계 최상위권인 대한민국 과학계는 올해도 국민이 원하는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포장됐다. 언론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이 ‘분자기계’는 이미 1983년에 처음 만들어진 이래 34년간 산업적 파급 효과는 없었음에도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정책은 대한민국의 연구자들이 원천연구보다는 응용연구에 더 몰입하는 연구 환경을 만들었다. 따라서 매년 시행되고 있는 연구과제 평가 또한 산업적 파급력 효과를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다. 이는 기초 원천 연구자들의 연구성과의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당연히 지금 세 명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한국인이었다면 오늘과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원천 연구는 연구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목표를 정하고 연구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원리를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게 핵심이다. 즉 핵심 기술을 이용해 응용까지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원천연구의 주목적이 돼야 한다. 연구자는 핵심기술 강화에 집중해야 하며, 그것이 상품화의 가능성이 있을 때 기업과 연계해 상품화 개발로 이어지는 것이 타당하다.

필자의 연구실은 투명하고 유연한 재료가 전기적 신호에 의해서 변형돼 사용자 입장에서 더욱 편리한 형태로 변형되는 원천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이 기술을 유연 렌즈에 활용한다면 렌즈가 앞뒤 이동 없이도 자체적인 곡률 변화를 통해 초점거리 조절이 가능하게 되므로 이상적으로는 더 얇은 형태의 렌즈 모듈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필름 형태의 유연 재료가 국소적으로 진동의 효과를 줄 수 있다면, 필요한 위치에서만 진동을 일으켜 버튼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개발도 가능하다. 위의 예시들은 독립적으로 진행된 두 가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며 주요 기업과의 협력 또한 진행 중에 있다.

문제는 그런 결과물들이 산업에 활용될 수 없는 경우 원천 연구를 지향하는 필자의 연구실은 존재 이유 또한 약해지는 게 현실이다. 응용 예시는 어디까지나 기업과의 협력이 잘 됐을 경우에 빛을 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중요한 평가지표가 돼 프로젝트의 성패가 갈리게 되는 현실은 재료의 물성 파악, 구조 설계의 차이가 어떠한 다른 변형 효과를 낼 수 있는지와 같은 핵심 연구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있다. 각자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본래 목적에 도달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연구로 치면 국가 연구기관의 역할은 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과거 중소·대기업 기술지원 중심으로 연구·개발 수행이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기업이나 대학이 할 수 없는 핵심원천 기술 중심의 대형과제 수행이 국가 연구기관의 미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필자가 속한 연구원에는 수많은 연구원들이 맡겨진 연구·개발 수행에 여념이 없다. 당장 눈앞의 상용화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힘, 국격을 키우기 위해서는 핵심원천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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