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빛나는 카리스마·강단있는 대본…서울 시청률 30.9%

"너같은 사람을 요즘 말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노(NO)답'이라고 하는거야. 닥치고 내려와. 추하게 버티지 말고 내려와서 네가 싼 똥 네가 치워."

드라마 속에서 의사가 내뱉는 말이지만, 그 대사에 한밤중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은 왜일까.

SBS TV 월화극 '낭만닥터 김사부'는 이같은 강력한 대사를 남기고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회의 주제는 '사필귀정'이었다.

시청률도 작품성에 화답했다.

17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밤 10시 방송된 '낭만닥터 김사부'의 마지막 20회는 전국 27.6%, 수도권 29.0%, 서울 30.9%를 각각 기록했다. 모두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강은경 작가의 강단있는 대본, 한석규의 빛나는 카리스마, 깔끔한 연출의 삼박자가 리드미컬하게 돌아간 이 작품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시의성을 강하게 띠며 시청자의 가슴을 위로했다.

◇ 의학드라마, 낭만을 이야기하다

제목에서부터 '낭만'을 이야기한 '낭만닥터 김사부'는 먹고 사느라,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바빴던 시청자에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하게 하였다.

한석규가 연기한 주인공 김사부는 의사로서 최고의 정점에 있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인물이다. 실력에서는 최고의 의사지만, 거대 병원의 기득권과 부조리, 잘못된 관행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눈감고 물러섰던 그는 그 이후 14년간 시골병원에 조용히 '처박혀' 의술을 빛내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랬던 김사부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내가 과거에는 침묵하고 묵인하고 비겁했다"고 고해성사를 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그가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게 만들었다.

세상은 그에게 대충 타협하면서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살라고 하지만 김사부는 "그래도 아직은 '의사 사장님' 되고픈 애들보다는 '의사 선생님'이 되고픈 애들이 많다고 믿고 싶다"며 진짜 의사의 길을 걷고자 한다.

그런 김사부에게 '악의 축'인 도원장(최진호)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 비현실적인 꿈을 꾸냐"며 어이없어한다.

그러나 김사부는 "그걸 전문용어로는 개멋 부린다고 하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고 하고"라며 '쿨하게' 받아친다. '너 같은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낭만을 나는 추구한다'는 듯한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드라마는 추억의 올드팝을 곳곳에 소환해, 이러한 김사부의 낭만에 추임새를 적절하게 넣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빌리 조엘의 '더 스트레인저'(1977)를 비롯해, 마돈나의 '머티어리얼 걸'(1984), 신디 로퍼의 '트루 컬러스'(1986), 비틀스의 '헤이 주드'(1968)를 적재적소에 넣은 드라마는 알든 모르든 그 음악에 귀를 기울인 모두에게 '당신도 우리도 한편이야'라고 윙크했다.

◇ 한석규로 시작해 한석규로 끝난 드라마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게 의학드라마이다 보니 차별화를 이루는 게 쉽지 않다. 천재 외과의의 활약상과 병원의 부조리 등은 익숙한 이야기다.

'낭만닥터 김사부'도 그러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었겠으나, 한석규로 인해 손쉽게 기존 의학드라마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 드라마는 타이틀롤을 맡은 한석규에서 시작해 한석규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중은 청춘스타인 유연석, 서현진과 나눠 가졌지만, 그가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무게와 존재감은 모든 배우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정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대사 전달력, 눈빛 하나로 천 가지 이야기를 하는 표정 연기, 순간 집중력으로 화면을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역시 한석규"라는 찬사를 끌어냈다.

연출을 맡은 유인식 PD가 "한석규는 극강의 자연스러움을 과시한다"고 극찬했는데, 시청자의 눈에는 한석규가 진짜 김사부인 양 들어왔다.

어쩌면 지금 청춘에는 한석규가 올드팝과 동의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로 그런 한석규가 김사부를 연기한 것 자체가 40대 이상에게는 '낭만'으로 다가왔다. 1990년대를 절정에서 풍미한 한석규가 '사부'가 돼서 나타나자, 시청자의 시곗바늘은 자동으로 뒤로 돌려졌고 잊고 지냈던 '그때 그 시절'의 가치와 정서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개천의 용이 사라지고,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극심화되며, 물질 만능이 지배하는 오늘이지만, 그래도 김사부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겠냐는 위안과 희망이 시청자의 가슴을 적셨다.

◇ 강은경 작가, 오늘을 이야기하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러한 인기는 물론, 강은경 작가의 명대본에서 출발한다.

'제빵왕 김탁구' '가족끼리 왜이래' '구가의 서' 등을 히트시킨 강은경 작가는 시청자의 가슴에 낭만을 당기면서 동시에 '바로 오늘'을 대본에 녹여내는 실력을 과시했다.

뉴스에서 똑같은 얼굴만 보아온 지 벌써 수개월째이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좀먹었던 자들의 만행이 드러난 오늘의 이야기가 '낭만닥터 김사부' 속 세상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물론, 강 작가는 일찌감치 이 드라마를 기획하고 구성했으나, 매일매일의 뉴스와 호흡하면서 등장인물의 대사에 시청자들의 울분과 분노를 담아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드라마에 대한 공감대를 높인 지렛대다.

그는 강동주(유연석 분)의 입을 빌려 "힘이 없다는 이유로 힘 있는 자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아서 반쯤 눈 감은 채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러한 이들의 비겁한 결속력이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군림하고 있었으니"라고 꼬집었다.

또 여원장(김홍파)은 "참 이상하죠? 우리 모두가 도윤완이 틀렸다는 걸 아는데, 지금 그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여전히 그는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걸까요?"라고 질문하게 했다.

강 작가는 마지막에는 "김사부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저항은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거라고"라는 강동주의 대사를 통해 우리 모두 포기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자고 이야기했다.

의사를 이야기하면서 오늘의 세상을 녹여낸 강 작가의 이러한 명대본은, 허공에 뜬 판타지보다 더 얄궂을 수 있는 낭만에 시청자가 마음을 내어주게 만들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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