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 청북교회 담임목사
[화요글밭]

1517년 독일의 신부였던 마틴 루터(M. Luther)가 비텐베르크교회에 그 당시 교회의 타락상을 비판하는 95개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됐다. 그 당시 종교개혁은 유럽이라는 지역과 중세의 시대적 상황을 넘어 세계 역사의 흐름 자체를 바꾼 대변혁이었다. 종교개혁은 중세시대를 근대시대로 이끄는 원동력이었고, 종교적인 운동을 넘어 사회·문화·정치·경제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위대한 사건이었다.

2017년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해다. 한국 교회는 물론이고, 세계 교회가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 학문적인 접근, 종교개혁의 현대적 적용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천운동, 그리고 종교개혁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고민 등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거룩한 것을 추구했던 그 기본, 즉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당시 루터를 비롯해 종교개혁에 동참했던 프랑스의 칼뱅(J. Calvin)이나 스위스의 츠빙글리(Zwingli) 등 개혁가들은 참된 신앙의 본질인 믿음과 성경과 은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창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구호 아래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고 계속 개혁돼야 할 과제를 안겼다.

오늘 우리 한국의 상황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개혁이 절실해 보인다. 정치권은 국민에 떠밀려서 개혁을 요구 당하고 있고, 1987년 체제인 현 헌법은 개헌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경제구조는 다시 원점부터 검토해야 할 위기상황에까지 몰려 있다. 컨트롤타워를 잃은 외교는 사방에 지뢰밭이 깔린 국제무대를 위험천만하게 지나고 있다. 너무 많은 사회구조를 개혁해야 하는 과제 앞에서 어느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의 형편이다. 그래서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서로 자신들이 개혁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기업들도 살아남는 차원이 아니라 앞으로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조적인 개혁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각 시민단체들은 끊임없이 사회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시대적인 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개혁은 꼭 필요한 요청이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정신으로 할 것인가. 500년 전, 역사적 물꼬를 터서 암흑시대를 빛의 시대로 변모시킨 개혁가들의 정신에서 배워야 한다. 고사당할 위기에 놓인 시대 앞에서 '개혁'은 먼저 내가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루터를 비롯한 개혁가들은 교회라는 중세 유럽의 거대한 절대권력 앞에서 자기들의 생명을 내놓고 개혁을 시작했다. 자신의 안위와 평안을 생각했다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지위와 신분, 탁월한 학력들을 갖고 있던 분들이다.

나를 지키고, 남의 희생만 요구하는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나의 것을 희생하는 겸손이 이 시대를 살릴 수 있다. 또 개혁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은 범인(凡人)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따라가지 못할 고상한 이론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수긍하고 따라갈 수 있는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와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실타래처럼 얽인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각 분야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며, 국민들도 삶의 자리에서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 의무와 책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개혁은 문제에 부딪쳤을 때 등 떠밀려 하면 늦는다. 앞서 준비하면 훨씬 더 수월하다. 그 지혜를 모아야 할 새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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