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방공무원(소방관)의 업무 과중으로 인한 부작용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업무의 특성상 위험부담이 어느 직종보다도 높지만 이에 대한 면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소방관 일상 업무는 늘 긴장한 가운데 출동 대기 중인 경우가 많고 고된 화재 진압과 구조 활동의 연속이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소방관들이 업무 수행 중이나 그 후유증으로 죽음에 내몰린다면 또 다른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소방관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그린 본보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5년 동안 자살한 소방관이 35명으로 순직한 소방관(33명) 보다 많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업무상 스트레스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불안, 불면증,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PTSD) 등을 겪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마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국소방공무원 대상 심리평가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0% 정도가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것으로 나온바 있다. 그런데도 이들 가운데 1개월 내에 치료 받는 비율은 겨우 3%에 그쳤다. 이들의 건강대책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방증이다.

오죽했으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사고 위험에 노출되고 건강에도 위협을 받고 있는 소방관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을까. 정부와 지자체에 각각 복지와 안전 규칙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인권위 조사결과를 보면 소방관의 불면증·수면장애는 일반인보다 20배나 높고 우울·불안장애는 일반인보다 15배나 많다고 한다. 업무 연관성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국감 때나 사회 이슈로 부각될 때만 반짝하다 사라지는 논의 구조로는 어림도 없다. 급기야는 얼마 전 소방발전협의회가 나서기에 이르렀다.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근무체계 등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서다. 중앙과 지방의 2원 구조 속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노출돼온 지 오래다. 교대근무제 손질 등 각 시 도별로 맞는 근무방식 개선책이 필요해 보인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 중 사망하거나 구조 과정에서 희생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이들의 값진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근무 여건을 살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게 바로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집단 안전을 지키는 길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전향적인 역할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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