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수매하는 비축미.
[이규식 문화카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영향으로 계란 값이 치솟고 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할 일상식품의 품귀현상 앞에서 우리 사회 농축산물 생산-유통-소비구조의 허점이 드러난다. 계란이 반드시 필요한 일부 품목 외에는 한동안 계란을 먹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음에도 불거지는 이런 혼란 앞에서 생각을 넓혀보면 이른바 '식량안보'라는 막연한 개념이 구체성을 띠고 다가온다.

정부는 쌀 1㎏을 1400원대에 사서 208원에 파는 헐값떨이를 한다. 창고에 비축된 쌀이 170만t이라는데 5t 트럭으로 34만대, 트럭 한대 길이를 5m로 본다면 연 170만m 즉 1700㎞로 서울 부산을 서너 번 정도 다녀야 할 거리로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쌀농사 기반이 무너지면 '안보' 상황에 버금가는 곤경과 위기가 닥친다는 전제 아래 정부는 7000억을 쌀값조절에 투여하는 셈이다. 쌀이 이렇듯 남아돈다 해도 쌀 막걸리는 대부분 변함없이 수입쌀로 빚고 떡볶이는 밀가루, 식당 밥은 대체로 중국산, 저가 김밥 역시 중국산 찐쌀로 만드는가 하면 햇반류의 가공식품 값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비축미를 사료용으로 방출한다면 아직 끼니 마련이 어려운 극빈층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여론의 질타는 매섭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입장, 벌써 오랜 세월 이런 소모적이고 어정쩡한 상황이 지속되지만 쾌도난마가 어려운 딱한 현실에서 '쌀'의 입지와 생존셈법은 나날이 복잡해져 간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62.7㎏라니 하루 섭취하는 쌀은 170g 남짓, 탄수화물이 비만과 건강저해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마당에 쌀의 입지는 좁아진다. 수십 년 째 가격이 고정된 식당 공깃밥 1000원이 그 단적인 사례로 머지않아 가시화될지 모를 '식량안보'에 대비하여 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다 다양하게 쌀을 소비할 실질적인 대안마련이 필요하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소박한 반찬에 둥그렇게 퍼 올린 '고봉밥'을 나누던 예전 식탁의 평화가 그리워진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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