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희 정신과 전문의
[투데이포럼]

불가능하고 무모해보이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승산이 없어 보이는 일을 비유해 쓰는 말이다. 계란을 아무리 던져도 바위는 깨지지 않고 오히려 계란이 깨지게 된다. 만약 정말로 바위가 깨지기를 기대하고 계란을 던진다면 그는 몽상가 일 것이고 깨지지 않을 줄 알면서도 계란을 던진다면 바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건 사람들과 다른 힘든 길을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현명하게 사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승산이 있는지 계산해보고 불가능한 일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것이다.

살다보면 깨뜨릴 수 없는 바위들을 만나게 된다. 옳지 않은 줄을 알지만 내 힘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다고 생각되는 제도, 관습, 관례들을 만날 때 바위에 부딪혀 깨지게 될까봐 피하게 된다. 처음에는 알면서 할 수 없이 피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무뎌져 가고 어느덧 대의명분이나 사회 정의는 헌책방에서나 있을법한 단어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사회에 적응일수도 있다.

얼마 전 이대학생들이 학교본관을 점거하고 시위를 했다. ‘평생교육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학)’ 반대로 시작한 시위는 나중에 학교 내 특정 인물에 대한 특혜의혹과 비리, 총장사퇴까지 이어졌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였고, 표면상 학교가 주장하던 학교 정책 일부를 수정했다. 내 기억으로 학생들이 시위해서 무언가가 개선된 몇 안 되는 사건이었다. 뒤이어 터진 대통령이나 그의 측근들의 여러 가지 비리나 추문은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람들은 매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촛불아래서는 나이도 지역도 성별도 지위도 모두 녹아들어있었고 추위도 잊은 채 한마음 한뜻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들의 뜨거운 마음이 정치인과 언론을 움직였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아직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통령탄핵안이 가결되었고 촛불민심을 언론에서 매일 조명을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몇 달이었다. 지금까지는 계란은 힘없는 민초들이고 바위는 민초들이 대항할 수 없는 거대 권력이나 사회시스템이라고 생각을 해 왔다. 그런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몇 달 동안 매 주말을 뜨겁게 달군 촛불이 녹인 것은 권력자들의 마음이나 비리를 저지른 불의한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라 열정과 정의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던 우리의 마음인 것 같다. 패배감과 실망감에 마음을 닫고 더 이상 움직이지도 뜨거워지지도 않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우리들 마음이 바위가 아닐까.

최근 몇 달 동안 딱딱했던 바위 같은 내 마음이 계란에 깨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나 한 번의 기적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 새해에는 움직일 수 없었던 거대 권력의 바위보다 더 단단한 내 마음의 바위가 다시 생기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고 올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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