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조 수사 다룬 영화 '공조'서 현빈과 투톱 주연

"20년 동안 밥을 짓거나 라면을 끓였으면, 이제 그 방면에서는 도사가 돼야 하는데, 왜 여전히 밥은 질거나 되고, 라면은 싱겁거나 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배우 유해진(47)은 "연극 경력까지 포함하면 연기 생활만 30년 가까이 되는데,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유해진은 지난해 생애 첫 원톱 주연을 맡은 영화 '럭키'(698만명)가 흥행에 성공한 뒤 '럭키가이'로 불린다. 충무로에서 러브콜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행여 흥행에 취해 긴장의 끈을 놓을까 봐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듯했다.

"지인들이 술자리에서 저더러 '너는 뭐가 걱정이냐'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이 바닥이 얼마나 냉정한 줄 아느냐'고 답하죠. 주변에서 저를 어떻게 바라보든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유해진은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코믹연기로 충무로에서 입지를 넓혀온 노력파 배우다. 예전에는 감초 연기가 전문이었지만 이제는 주연 배우로 올라섰다. 상대 배우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영화의 무게중심을 잡는 균형추 같은 역할을 주로 한다.

남북한 공조 수사를 소재로 한 영화 '공조'에서도 현빈의 현란한 액션 연기가 유해진을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유해진은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헛똑똑이' 형사이면서도 아내와 딸, 그리고 백수인 처제까지 먹여 살리는 인간미 넘치는 남한 형사 강진태 역을 맡았다.

"남북한 공조 수사라는 소재 자체도 흥미가 있었지만, 결국 사람 이야기라는 점에서 끌린 것 같아요. 영화에서 제가 배에 칼을 맞는 장면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 현빈도 같은 부분에 총을 맞더라고요. 아픈 곳이 서로 같은, 너와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해진은 이 영화에서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소화해낸다. 북한에서 내려온 과묵한 형사(현빈)를 구슬려 정보를 캐내는 것이 그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나리오에서는 대사가 훨씬 더 많았는데, 일부 덜어낸 게 그 정도"라고 했다.

유해진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털털해 보이지만, 사실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한번 사귀면 오래가지만, 누군가와 친해지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예전에 영화 '감기'를 찍을 때는 장혁 씨가 산에 같이 가자고 먼저 제안해 가까워졌는데, 이번에는 현빈이가 저에게 '집에 찾아가 술 한잔 해도 되느냐'고 연락을 해왔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술을 마시면서 친해졌죠. 후배들이 먼저 다가오면 정말 고맙더라고요. 저는 사람을 만날 때 느리게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유해진은 "에너지가 약해질 때마다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큰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배우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고민을 한 지는 꽤 오래됐죠. 그래도 저는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배우로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술자리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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