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539_374751_0423.jpg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이름이 찍혀있는 녹조근정훈장. 대전시 제공
33년 이상 흠결 없어야 수상, 퇴직 공무원들 최고의 영예, 훈장증 수여자가 ‘권한대행’

“30년 넘는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명예로운 상인데 남에게 자랑하기도 부끄러워요”

지난 연말 대전 서구에서 36년의 공직생활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A(62) 씨는 4·5급 일반·정무·별정직을 대상으로 하는 녹조 훈장을 받았다. 녹조훈장과 함께 받은 훈장증에는 대통령 이름이 아닌 현재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A 씨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는 평생 간직할 소중한 상인데 대통령이 아닌 대행자에게 받아 아쉽다”며 “이런 시국에 훈장을 받게 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탄핵정국의 여파가 공직 훈장증에까지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으며 훈장을 수상한 퇴직자들이 씁쓸함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달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됨과 동시에 모든 공직 훈장증을 비롯한 정부차원의 각종 대통령 표창이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으로 명시되고 있다. 정부가 퇴직공무원에게 수여하는 훈장 기준은 공무원 재직기간 33년 이상이면서 정부포상지침에 따라 흠결이 없어야 하며, 해당부처의 공적심사위원회의 추천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야 한다.

지난해부터 재직기간 중 한 번이라도 징계를 받으면 징계의 경중이나 사면여부, 비위유형과 관계없이 근정훈장을 비롯한 퇴직포상을 받지 못하도록 ‘정부포상 업무지침’이 강화되며 근정훈장 수여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다. 이처럼 수여기준이 까다로워 더욱 값진 상인만큼 대부분의 수상자들은 훈장증에 탄핵정국의 얼룩을 그 어느 때 보다 아쉬워하고 있다. 일부 퇴직자들은 역사적 시기에 가장 정확한 증거 자료를 갖게 됐다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홍조근정훈장을 받은 B 씨는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이 준 상이라 아쉬운 면도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는 것도 현재 상황으로써 그리 유쾌하진 않을 것 같다”며 “상을 준 주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국민이 준 상으로 생각하고 받겠다”고 말했다. 관계 공무원들도 권한대행으로 공직 훈장증이 수여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씁쓸한 기색을 드러냈다.

대전시 총무과 공무원 포상 담당자는 “지난 노무현 정부 탄핵은 3~5월 이뤄져 포상시기와 겹치지 않아 권한대행으로 훈장증이 수여되지는 않았는데 이번은 시기가 맞물렸다”며 “내부에서는 국무총리 권한대행 시기에 수상하는 것을 씁쓸해하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룬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