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핵없는사회를위한충북행동 집행위원장
[투데이포럼]

2016년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가 그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으로 인한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위기 속에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가 눈물겹게 그려진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정치권은 무능함을 넘어서 국민과 언론을 속이기까지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판도라를 보는 내내 세월호 참사를 함께 떠올렸다는 소감을 밝히고 있다. 작년 지난해 12월 이 영화가 개봉한 후 전국적으로 공동체 상영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각종 회원행사와 송년모임으로 다섯 차례 이상 공동체 상영을 진행했으며, 이번 주에 또 한 번의 공동체 상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원전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재난블록버스터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달렸지만, 우리는 사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 처해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핵발전소의 개수는 25기이다. 건설 중인 핵발전소가 5기, 건설예정인 핵발전소는 4기에 달한다. 대부분의 핵발전소들은 동해안을 따라 울진·영덕·울산·부산에 밀집해 있다.

우리나라의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최대라고 한다. 만에 하나 사고가 일어난다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선전해 왔지만, 경주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 앞에서 이 모든 상황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를 감싸고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수백회의 여진이 일어나고 있는 경주지역 인근 주민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늘 피난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해지니, 그 공포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일어난 이웃나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후쿠시마는 여전히 죽음의 땅이며, 그곳 주민들은 온갖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판도라가 열어버린 상자 속에서 온갖 재앙이 인간에게로 다가와 버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상자에 남아 있어 인간을 살게 한 것은 바로 '희망'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선택'할 수 있는 희망이 남아있다.

핵발전소 전체를 모두 멈추게 할 수 없다면 이미 오래 전에 수명을 다해 언제 재앙을 불러올지 모르는 핵발전소부터 점차 멈춰야 한다. 또한 새롭게 핵발전소를 지으려는 계획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핵발전소를 멈춘다고 해서 당장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는 사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고지서를 보내지 않는 태양과 바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하며, 우리 삶의 방식을 좀 더 간소하게 정리해야 한다. 평생을 농사 지으며 깃들어 살던 정든 땅을 떠날 수도, 떠나지 않을 수도 없는 밀양할머니들의 고통, 온갖 암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고통, 그리고 언제 일어날지 모를 재앙의 공포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방만한 삶의 방식과 욕심 때문에 누군가 절대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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